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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파일] 김여정은 왜 펜스를 만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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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북한과의 대화 의사를 밝혔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라트비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밝힌 내용입니다. 당시 이 발언의 배경을 놓고 '북·미 대화의 진척이 있는 거냐', '왜 라트비아 대통령에게 저런 말을 한 거냐' 등등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당시 "최대한의 압박이라고 하는 예전의 미국 스탠스에 비하면 지금은 평창올림픽, 남북대화 두 가지 모멘텀이 작용하면서 미국의 태도도 우리와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판단한 거다. 그런 정도의 판단에서 나온 표현이다"라는 원론적인 설명만 내놨습니다.

● 드러난 북·미 접촉 시도

13일 발언의 배경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로 드러났습니다. WP는 미국 백악관과 부통령실 관리들을 인용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미국과 북한의 회담이 비밀리에 추진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만 성사 직전 북한 측이 회담을 취소하면서 불발됐다고 전했습니다.

평창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지난 10일 회담을 할 계획이었지만 회담 2시간 전 북측이 돌연 취소해 무산됐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백악관도 관련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펜스 부통령은 이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었고, 이 만남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강조할 기회로 삼으려 했지만 북한이 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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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관, 北 접촉 '극비리 결정'

회담 추진 과정도 공개됐습니다. WP는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이 회담이 펜스 부통령 방한 2주 전부터 논의됐으며, 미 중앙정보국 CIA가 펜스 부통령의 방한 기간 동안 북측이 그와 만나길 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논의가 시작됐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이를 중재했다고도 말했습니다.

북한의 회담 초청 제의는 백악관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었으며,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백악관 집무실 회의에서 북한의 초청에 응하기로 최종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지난 5일 펜스 부통령이 일본과 한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기 사흘 전입니다.

● 美, 대화는 최대한의 압박 연장선

당시 회의에는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아이어스 부통령실 비서실장이 참석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도 전화로 동참했고, 짐 매티스 국방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장관도 논의과정에 참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북측과의 회담을 '최대한의 대북 압박'이라는 연장선에서 봤다고 백악관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북측과 협상 목적이 아니라 북한을 직접 대면해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하려 했다는 겁니다. 백악관은 다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을 남측에 파견한 것을 보고 북한이 이번 사안을 중대하게 여기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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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비밀 접촉 장소는 '청와대'

회담 장소와 방법 등 구체적 내용이 확정된 것은 펜스 대통령이 지난 8일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였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올림픽 개막식 이튿날인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기로 합의했습니다. 회담에 한국 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청와대는 양측의 보안 요청을 받아들여 중립적인 회담 장소로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가 있는 청와대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회담에는 미국 측에서 펜스 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표, 아이어스 비서실장이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북측에서는 김여정과 김영남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회담은 만남 2시간 전 북측에서 전격 취소를 통보 해오면서 무산됐습니다.

● 김여정, '대미 접촉 의미 없다' 판단한 듯

WP는 펜스 부통령이 회담 전날인 9일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하고,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 전개 등 압박 캠페인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나온 시점에 회담이 취소됐다고 전했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당시 천안함 기념관에서 "비핵화는 변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돼야 한다. 북한이 테이블 위에 비핵화를 올려놓고 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며 대북 강경 메시지를 쏟아낸 바 있습니다.

아이어스 비서실장은 회담 취소 배경과 관련해 "북한은 펜스 부통령으로부터 부드러운 대북 메시지를 바라며 회담에 매달렸다"며 "이를 통해 올림픽 기간 그들의 선전에 국제무대를 활용하려 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은 펜스 부통령이 국제무대를 그들의 독재 사실이나, 대북압박을 위한 우리의 강한 동맹을 보여주는 데 활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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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보면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미국과 협상을 갖고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걸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북·미 직접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우리도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에 나섰던 걸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대화에 임하는 미국과 북한의 생각이 너무도 달랐고 이를 눈치챈 북한이 녹록해 보이지 않는 북·미대화 대신 남북정상회담을 카드로 남측에 기대를 걸었던 걸로 보입니다.

북측은 그렇게 북·미회담을 취소한 직후, 청와대를 찾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와 함께 남북 정상회담 평양 개최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은 즉각적인 수락이 아니라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건 조성의 핵심은 바로 북·미 대화였습니다. 피해온 길을 다시 권한 셈이니 적어도 북한이 기대했던 답은 아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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