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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근로시간 단축]①3년만에 취직, 1년만에 사표…'살인적' 근무 인내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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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로시간 OECD 회원국 중 2위…"평균보다 한달 더 일해"

'일자리 나누기 효과'도…"더는 미룰 수 없다"

[편집자주] 한주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월 임시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다. 최근 몇 년 간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했던 정치권은 번번이 합의에 실패하다가 지난해 말 큰 틀에서 잠정 합의에 성공했다. 다만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부담 등을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하면 '최저임금 인상'에 버금가는 거센 논란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뉴스1>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직장인·기업인·정치인·학계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심층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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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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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정혜민 기자 = # 이진규(가명·30)씨는 지난 2016년 초여름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었다. 3년 동안 100곳 이상을 지원해 입사한 '첫 직장'이었다. 연 매출 200억원 수준의 생활용품 수입 유통 회사였다.

그러나 취업 뒤에 본격적인 고생길이 열렸다. 이씨는 외국 고객사와 제품 거래를 추진하는 업무를 했다. 매일 같이 야간 근무를 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18시간(점심·저녁 식사 시간 포함)을 일하기도 했다.

이씨의 연봉은 2000여만원이었다. 주말과 설날 같은 연휴에도 출근했지만,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수당을 받은 적 없다. 연인과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했다. 회사 대표는 이씨에게 "일 배우는 입장이니까 오히려 돈을 내고 근무해야 한다"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1년 정도 일하다가 퇴사했다. 미국 대학 졸업장에 950점 이상의 토익 점수 등이 '스펙'인 이씨는 올해 구직 활동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70시간 정도 일한 것 같다"며 "다시 백수가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더는 견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혹사 수준의 장시간 노동은 이씨만이 경험한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한국에 있는 상당 수 근로자가 겪는 '현실'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에 있는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이다.

OECD 회원국 35개국 평균 1764시간보다 한 달 이상(305시간·38.1일) 더 일하는 셈이다. 올해 '2월 임시국회(1월30일~2월28일)'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근로시간 단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뉴스1>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OECD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인데 더는 근로시간 단축을 미룰 수 없다"며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큰 틀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한 상태다. 국회 환노위 여야 간사는 지난해 11월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한주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다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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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5차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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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부터 직원 수 300인 이상인 기업을 시작으로 2020년 1월 50~299인 기업, 2021년 7월 1인~49인 기업이 적용 대상이다. 정부도 근로시간 단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근로시간 단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주당 68시간 근무를 허용케 한 고용노동부의)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을 강력하게 반대하던 중소기업들도 '대세를 거스르기 힘들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해 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근로시간 단축 관련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석 중소기업인들은 '보완책'을 전제로 했으나 근로시간 단축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특히 이씨처럼 장시간 근무를 하고도 연장·휴일·연차 수당을 받지 못 한 경우가 적지 않다. 연장 근로를 해도 수당만 제대로 나오면 실수령 금액이 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 디자인 업체에 다니는 김모(26·여)씨는 "연차 수당이 나오지 않으면 노동 착취당했다는 기분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를 도모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존 직원의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업무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직원을 고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지난달 한 여성기업인 행사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근로시간 단축은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 방안 중 하나"라며 "반대 목소리가 있지만 실제 법 시행 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근로시간 문제가 아닌 '임금 문제'로 국회 처리가 무산된 바 있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수당을 놓고 여당과 야당 일부 의원이 '이견'을 냈기 때문이다. 휴일 근무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수당 모두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영세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한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올해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서는 이를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휴일 근로를 아예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사업주를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하거나 근로자에게는 1.5배의 대체휴일 수당 등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방안을 마련한 까닭은 중복 수당 문제로 합의를 보지 못 한 근로시간 단축 현안을 이달 임시 국회에서 처리하기 위해서다. 다만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이 검토안을 동의할지 의문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환노위 관계자는 "2월 국회에서 개정안이 처리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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