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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국어 공부하다 내 이름 '영혜'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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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주관 OBS 인턴 해나 포쉘

생후 13개월에 미국 미네소타 입양

고교시절 첫 방한, 육회가 가장 좋아

"단일팀 경기를 보면 누가 남·북한 선수인지, 입양아인지 알 수 없잖아요.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일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이 악수하는 걸 코앞에서 지켜봤는데 한국계 미국인 입양아인 제 가슴이 왜 그렇게 뭉클했는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올림픽 주관 방송사 OBS(올림픽 브로드캐스팅 서비스) 인턴으로 일하는 해나 포쉘(22)은 단일팀 첫 경기를 떠올리며 웃었다. 그의 한국 이름은 황영혜. 한글을 모르는 미국인 양부모의 착오로 그동안 자신의 이름을 잘못된 영어 표기였던 ‘영희’로 알고 있다가, 한글을 배우면서 ‘영혜’라는 본명을 찾았다. 영상 촬영·편집이 취미인 그는 올림픽 기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카메라 촬영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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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강릉 올림픽 파크를 방문한 황영혜씨. [사진 황영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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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생후 13개월에 대구의 한 기관에서 미국 미네소타의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미국인 양부모는 황씨와 중국계 여동생을 입양했다. 태어난 나라에 무관심했던 주변 입양아들과 다르게, 그는 어릴 적부터 한국이 궁금했다. "입양이 안 됐으면 한국에서 자라며 한국어를 썼겠구나. 한국에서의 삶은 어떨까 늘 궁금했어요."

미네소타주에서 버지니아주로 이사 온 뒤 주변 한국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배웠다. 고교 시절 한국어진흥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 처음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것을 계기로 황씨는 한국에 있는 대학 진학을 결심했고, 2015년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한국 조지메이슨대 국제학과에 입학했다. 사진 촬영을 즐기는 황씨는 대학생활을 하며 한국 구석구석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좋아하는 출사 장소는 서울 혜화동,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육회다. "종로에서 처음 육회를 먹은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다니…."

자신이 태어난 대구도 방문했다. "학교 친구들과 부산 해운대 여행을 떠날 때였어요. 기차가 중간에 대구를 지난다는 걸 알고 잠시 내렸죠." 황씨는 대구 시내를 두 시간 동안 돌아다녔다. "처음 방문했던 낯선 도시가 너무도 친숙하게 느껴져 깜짝 놀랐어요. '아 여기가 내가 태어난 곳이구나' 생각하니 모든 게 신기했죠."

황씨는 얼마 전, 입양기관을 통해 먼저 입양된 친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개인정보 문제로 오빠의 연락처나 주소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오빠에게 입양기구를 통해 편지를 보냈다. "친엄마도 궁금하지만, 오빠의 존재를 알게 돼 기뻤어요. 오빠도 입양돼 나처럼 좋은 부모님 밑에서 지내고 있는지, 미국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한국에 관심은 있는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아 편지를 쓰는 데 꽤 오래 걸렸어요." 아직 답장이나 다른 연락은 받지 못했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오빠가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라는 황씨는 "오빠도 분명 다른 입양아처럼 한국에 별 관심이 없을 거예요. 제가 한국어나 한국 문화도 오빠에게 설명해주고 싶어요. 엄마도 오빠도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캠퍼스 커플인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면서 지난 1년 반 동안 '고무신' 생활을 해온 황씨는, 올해 4월 남자친구의 전역으로 '꽃신'이 된다고 기뻐했다. 그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마리사 브랜트(박윤정)와는 미네소타에서 비교적 가깝게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했다. "마리사가 국가대표로 뛴다는 걸 알고는 나도 미네소타에서 아이스하키를 해볼 걸 그랬나 잠깐 생각도 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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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마리사 브랜트(박윤정) 선수와 함께한 황영혜씨. [사진 황영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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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의 미국 양부모는 NBC 올림픽 중계방송에 그가 잠깐 등장한 장면을 보고는 "우리 딸이 올림픽 방송에 나왔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그러셨어요. 너도 올림픽을 위해 뛰는 거라고. 마트에 갈 때마다 '우리 딸 봤냐고' 자랑한다며 엄청 좋아하셨어요. 저는 잠깐 나온 것뿐인데. 하하." 그는 "올림픽 때 마리사 뿐 아니라 다른 입양아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제가 다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했다.

3년간 한국에서 공부한 황씨는 교칙에 따라 곧 미국 현지의 조지메이슨대로 가서 남은 학업을 마쳐야 한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학부 과정은 3년은 국내에서, 마지막 1년은 미국 본교에서 학교에 다닌다. "제가 한국에 온 지도 3년이 됐고, 많은 것이 변했어요. 이제 한국인 친구들이 저보고 '토종 한국인' 같다고도 해요. 가끔 미국에 돌아가면 문화적 충격을 받을 때가 있을 정도죠. 한국과 미국 문화를 모두 겪었고 알게 된 만큼, 언젠가는 양국 간 교류를 위해 일해보고 싶어요." 그는 "21일간의 올림픽 인턴생활을 끝내면 다시 종로로 육회를 먹으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저를 낳아준 엄마, 친오빠와 함께 혜화동을 걷고, 종로에서 육회를 먹을 날이 올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하는 황씨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강릉=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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