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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윤택 이어 오태석도… 성추문에 무너지는 연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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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선 연출가 페북에 '미투' "서울예대 때 교수님이 성추행"

극단활동 여성들도 잇단 '미투'

'ㅇㅌㅅ' 이니셜로 성추행 폭로

당사자, 입장발표 하려다 연기

연극계를 뒤흔든 성추행 파문이 연극 경륜 50년의 원로 극작가·연출가인 오태석(78)에게로 번지고 있다. 성추행 피해자들은 폭로 글에서 가해자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름 이니셜을 쓰거나 연극 제목 등을 거론하며 사실상 오태석을 지목하고 있다. 한국 대표 연출가 중 한 명인 이윤택(66)에 이어 '설마' 했던 상징적 원로마저 성추문에 휩싸이면서 110년 역사의 한국 연극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조선일보

성추행 파문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19일 과거 성폭력에 대해 공개 사과하는 연출가 이윤택.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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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공상집단 뚱단지'의 연출가 황이선씨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2002년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했을 때 극단을 운영하는 극작과 교수'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황씨는 이 글에서 "학과 부학회장이 된 뒤 가장 큰 임무는 ○○○ 교수님을 잘 모시는 일이었다"고 했다. 당시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로 극단을 운영한 인물은 오태석이 유일하다. 황씨는 "밥자리, 술자리가 잦아지며 약속이나 한 듯이 (부학회장이던) 내가 옆에 앉았고, (교수는) 손부터 시작해 허벅지, 팔뚝 살 등을 만졌다"고 했다. 그는 또 해당 교수가 2003년 2학기에 차 안에서 "춥다고 덮으신 무릎 담요를 같이 덮자시면서 허벅지에 손을 올리셨다"고 한 뒤, 더 적나라한 추행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다.

연극계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는 여성 A씨 역시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오태석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A씨는 "'백마강 달밤에'라는 연극 뒤풀이에 참석했었다. 그 연출가는 술잔을 들이켜는 행위와 내 허벅지 부근을 주무르고 쓰다듬는 행위를 번갈아 했다"고 썼다. '백마강 달밤에'는 오태석이 대표인 극단 목화에서 그가 직접 연출한 대표작이다.

오태석에 대한 의혹은 극단 목화 출신 배우 B씨가 지난 15일 소셜미디어에서 'ㅇㅌㅅ'이란 이니셜을 써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전하면서부터였다. B씨는 당시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까닭은 단 한 번만이라도 책임 있는 어른의 모습을 기대했던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라고 했다.

연극계 한 관계자는 이날 "용기를 낸 피해자들은 성추행 상황과 표현의 선정성만 조명하는 보도나 대중의 일회성 분노를 원하진 않을 것"이라며 "오랜 시간 짐작과 의혹 속에 계속된 문제를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 시스템 개선의 차원에서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소셜미디어에선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연대의 뜻을 나타내는 '위드유'(withyou·당신과 함께)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연극인과 연극 팬들이 관련 글을 올리며 해시태그(#)를 달거나 팔이나 손에 'With You'를 적은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작년 연극계 데뷔 50주년을 맞은 오태석은 1984년 극단 목화를 창단했고 약 70편의 희곡을 썼다. 대표작 '춘풍의 처'를 비롯, '태(胎)' '부자유친' '백마강 달밤에' '천년의 수인'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연극계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지냈고 2014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오태석은 극단 관계자들을 통해 "20일 입장 발표를 하겠다"고 했으나 이날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연기했다. '극작과 교수'의 성추행을 폭로한 연출가 황이선씨는 본지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가 겪은 일, 생각과 의견은 페이스북에 나와 있는 대로이며 더 추가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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