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중간선거 지면 탄핵 악몽 우려 … 트럼프는 일자리가 급했다

댓글 1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 상대 전방위 통상 공세 속내

11월 공화당 지면 보호막 사라져

일자리 내세워 지지층 결집 총력

안보 의존도 높은 한국 표적 삼아

한국의 대북 접근에 불만 분석도

중앙일보

1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에서 주말을 보내고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 아들 배런(오른쪽부터)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고위 관리가 미국 정부 관계자에게 따졌다. “한·미 FTA가 발효되기 직전인 2011년에 비해 한국의 전체 수입은 20% 이상 줄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3%도 안 줄었다. FTA가 미국에 도움이 되고 있는 거다.”

미 정부 관계자는 “당신이 잘못 알고 있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럴 리 없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점심 내기’로 이어졌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직원들 시켜 통계를 뽑아 보니 당신 말이 맞았다. 밥을 사겠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 통상 관리들은 “미 상무부나 무역대표부(USTR)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양국 간 호혜적 관계를 아무리 상세히 설명해도 ‘음, 그렇지만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상품)가 200억 달러가 넘는 것 알고 있지?’란 반응이 돌아온다”고 털어놓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정교한 분석이나 수치를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들에게 단순하게 입력되는 ‘무역적자 200억 달러’에 목을 매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발동으로 시작해 철강에 대한 관세 폭탄 예고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공세는 전례가 없다. 단순히 중국을 겨냥한 압박에 한국이 유탄을 맞는 상황이 아니다. 전방위 통상 압력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사문화한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꺼내든 만큼 이를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한국의 핵심 산업으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실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부터 반도체에 대한 관련법 적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1차 원인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다.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33명)을 선출한다. 여기서 진다면 국정 동력을 상실해 3년 후(2020년 11월) 대선에서 연임이 힘들어질 수 있다. 공화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면 가뜩이나 마뜩잖은 트럼프의 보호막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트럼프가 탄핵에 직면할 수도 있다.

트럼프로선 경제적 판단이건 정치적 판단이건, 논리적이든 포퓰리즘이든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어떤 조치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미 안보 의존도 때문이라도 쉽사리 ‘노(No)’라고 말하지 못하는 한국에 대한 압박은 국내 유권자를 설득할 가장 좋은 카드다.

백악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달 초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이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40%를 기록한 것에 백악관은 매우 고무돼 있다”며 “감세와 일자리 증가 등 유권자의 ‘체감 경기’ 호전을 노린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이 지지율 회복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분석 아래 향후 가용한 모든 ‘안’이 트럼프 책상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미국 내 일자리 증대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철강·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수입 규제가 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로선 무역 불균형 해소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선거의 필승 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또 북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미 간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후폭풍이 원인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한국산 세탁기, 태양광 패널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은 한국을 표적으로 삼은 정치적 판단이었다. 철강 폭탄 관세 방침도 한·미의 외교 갈등과 분리돼 있지 않다는 것이 워싱턴 싱크탱크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일본·한국과의 교역에서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들 국가의 일부는 ‘이른바 동맹(so-called allies)’이지만 무역에선 동맹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뒤 귀국한 직후에 나왔다. 이어 16일의 철강 관세 부과 방안이 이어졌다. “가뜩이나 한국의 대북 접근이 불편하던 차에 북한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까지 나오자 트럼프 정부가 통상 압박을 지렛대로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경제 동맹 관리’에 실패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트럼프 정부 경제 정책의 흐름이나 핵심 인사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이다. 지난달 17일 방미 예정이던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일정 전격 취소도 그 한 사례다. “트럼프 경제팀이 분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산업부의 공식 설명이지만 “방미 기간 중 미국 측의 세이프 가드 조치 발표가 예상됐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장관이 스타일 구기는 한이 있더라도 집요하게 미국을 설득하고 접촉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