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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김진수 여수민예총 회장 “광어든 도다리든, 좌파든 우파든 보듬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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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주제 시집 ‘좌광우도’ 내

경향신문

시를 쓰는 글쟁이이면서도 “시답지 않은 짓거리”라며 한사코 시집 내기를 사양하던 시인 김진수씨(58).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여수지부(여수민예총) 회장이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인 그가 첫 시집 <좌광우도>(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여순사건’의 시작과 끝, 그리고 현재 생존해 있는 유족들의 삶을 오롯이 담은 시 65편을 실었다. ‘여순사건’을 주제로 한 시집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시집 이름 ‘좌광우도’는 갯마을 상식으로, 모양이 똑같은 생선이지만 ‘눈이 좌측에 붙어 있으면 광어, 우측에 있으면 도다리’다. 김씨는 이를 시집 이름으로 붙인 이유에 대해 “광어든, 도다리든 결국은 물고기이고 같은 바다에서 사이좋게 살아가는 생물”이라며 “우리도 이젠 좌파니 우파니 나누지 말고, 서로 어울려 악수하고 보듬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수에서 뱃길로 70㎞ 떨어진 섬, 초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으로 교사이던 외할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어머니가 16세이던 때였다. 경비정이 섬에 들이닥쳐 외할아버지와 마을 청년 14명을 피투성이로 만든 뒤 싣고 갔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여순사건 유족이다.

그는 2007년 ‘불교문예’로 등단한 데 이어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는 시력(詩力)을 지녔지만 그 흔한 시집 한 권 내놓지 않았다. 그는 “늘 부족하고 모자라는 글이었다”며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올해엔 시집을 펴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올해로 여순사건 70주년이 됐는데도, 여수는 여전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다”면서 “온 시민이 맘을 모아 그때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치유해보자는 화두 하나를 던져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신 없는 봉분에 해마다 차례를 지내는 유족의 아픔을 담은 ‘헛장’, 여수지역 지식인 125명을 추려 총살한 ‘형제무덤’, 수많은 시민들을 철사로 묶어 바다에 가둔 ‘애기섬 수장터’, 여학생들이 군인을 쏴 죽였다는 정부의 허위 발표를 소재로 한 ‘환상의 여학생 부대’ 등의 시를 통해 당시 여수의 비극을 그림처럼 떠올려놓고 있다.

그는 “여순사건은 그해 봄 시작된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에 반대한 군인들과 여수·순천 일부 시민들이 진압군에 맞서면서 무고한 주민 1만1131명(전남도 집계)이 희생된 비극”이라면서 “그런데 바로 그 쌍둥이 사건인 ‘4·3’은 이미 법정기념일이 되고 수백억원을 들인 각종 추모사업을 펼치고 있는데도, 여순사건은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여수시민들은 아직도 ‘그때’를 얘기할 때면 엄동설한처럼 주눅이 들어버린다”면서 “지역 공동체가 그 해법을 찾는 데 힘이 부치고,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 사건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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