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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소재원 작가 “결혼 후 가정의 울타리에 갇힌 엄마·아내들 이름 찾아주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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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떠났다’ 펴내

고부로 만난 두 여자,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깨

“약자 대변 작가는 지키고 싶은 수식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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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제 이름을 찾아야 해요.”

영화 <터널> <소원> 등의 원작 작가로 유명한 소재원 작가(35)의 신작 <이별이 떠났다>(새잎)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600쪽에 달하는 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PF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소 작가는 이번 작품이 “아내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어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결혼 3년차예요. 아이는 24개월이고요. 아내가 원래 사업을 하던 친구로 ‘대표’로 불렸었는데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는 누구의 엄마로 불리더라고요. 아내를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사회가 굉장히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엄마로, 딸로, 여자로 살아온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극중 50대 초반인 서영희는 남편의 외도 이후 집 안에 스스로를 가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서영희 아들 한민수의 여자친구 정효가 “어머님 아들 아이를 임신했다”며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20대 초반인 정효는 출산 전까지 서영희와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동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서영희는 정효에게 ‘엄마’가, 정효는 서영희에게 ‘딸’이 된다.

소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절대 엄마와 딸이 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시어머니도 며느리였고 거기서 파생하는 어려움들을 겪었을 것”이라면서 “그 공감대 속에서 이상적인 관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여성이 편견과 맞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나아가는 데까지 연대하는 것으로 그린다.

서영희는 무책임한 자신의 아들을 나무라고 정효의 편에 선다. 정효를 위해 아이를 맡아 키우겠다고 한다. 정효는 “아이를 낳으면 미래를 망칠 것”이라는 외부 세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또한 서영희를 이해하고 그의 편에 서서 “엄마의 이름을 찾으라”고 말해준다.

소 작가는 “서영희 세대의 지혜와 정효 세대의 당돌함이 만나면 일상에서의 부조리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영희와 정효는 때때로 여성에 대한 기성관념을 깨뜨려 통쾌함을 선사한다. 특히 서영희는 논리적인 발언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매사 감정적이고 자녀의 삶에 집착하는’ 대중문화 속 엄마의 전형성을 거부한다. 소 작가는 “‘X세대’라는 40대, 그리고 50대 초반까지의 여성들은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로 사회적 지위를 얻었으나 결혼 이후 가정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잃게 되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들에 억눌려왔을 것이다. 그들은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고 논리적이고 사회적인 발화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영희는 남편과 이혼을 선택한 후에야 “이별이 끝났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별까지 사랑이기에, 무감각하게 됐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이별”이라고 말했다. 이별이 끝난 후 서영희는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정효와 한민수, 서영희와 한민수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어그러진 관계에서 사랑을 확인한다는 것은 현실에선 어려운 일이 아닐까. “누구나 행복하려고 살아요. 사랑의 다른 이름은 행복이기도 하죠. 각자의 삶 속에서 상처 받아서 잠깐 엇나가긴 하지만 함부로 비난할 순 없지 않을까요. 그들도 다 사랑을 원했던 사람들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별이 떠났다>는 올해 5월 MBC 주말 드라마로 편성이 확정됐다. 김민식 PD가 연출하고 배우 채시라가 서영희 역에 캐스팅됐다. 소 작가의 여러 작품이 영화화됐지만 드라마는 처음.

2008년 <나는 텐프로였다>로 데뷔한 소 작가는 13살 때 부모의 이혼을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장애가 있었고 집은 가난했다. 글은 “떠난 어머니에게 (자신을) 증명할 유일한 것”이었다. 소 작가는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면서도 “한 달의 절반은 글을 쓴다”는 원칙을 지켰다. 최근 3년간은 매일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4시간씩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다.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 다른 작가보다 더 많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다. 그는 자신의 책 출간이 혹여나 다른 작가의 기회를 뺏는 것이 될 수도 있기에, 더 잘 쓴 글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소 작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균>이나 위안부와 한센병 문제를 다룬 <그날> 등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발표해왔다. 이 때문에 작가에게는 ‘약자를 대변하는 작가’라는 수식이 붙었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수식”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약자는 결국 우리잖아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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