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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통신비 인하 필요없다” 태도 돌변한 이통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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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편요금제’ 합의 불발…공은 국회로

“한국 요금 이미 해외보다 저렴

보편요금제 도입 필요성 인정못해”

업체 ‘정부 취지 공감’서 강경 선회

‘국회 입법 공방 겨냥한 포석’ 분석

정부 “통신비 인하 여론 외면 힘들것”



한겨레

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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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요금수준은 해외보다 저렴하고, 데이터사용량 증가로 인해 가계통신비 부담이 증가한다고 볼 수 없으며, 전국민의 40% 이상이 이미 저렴한 요금으로 통신서비스를 이용하고, 알뜰폰이 보편요금제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요금제의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지난 9일 열린, 통신비 인하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정책협의회)의 8차 회의에서 이상헌 에스케이텔레콤(SKT) 상무가 발표한 내용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통신비가 싸서 통신비 인하 정책은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이 상무는 또 “통신시장이 정체 및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편요금제까지 시행될 경우 통신사업자는 감당할 수 없는 경영부담을 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보편요금제’는 적정 요금으로 기본 수준의 데이터·음성을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지배적 사업자(에스케이텔레콤)가 의무적으로 내놓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 제공’을 예시로 제시한 바 있다. 이통사들은 이전 회의까지 ‘통신비 인하’라는 취지 자체는 반박하지 않았다. “통신비 부담을 경감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보편요금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다”(5차 회의), “통신비 부담 경감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법률로 보편요금제를 강제로 도입하는 것은 우려스럽다”(6차 회의) 등의 태도였다. 8차 회의에 참석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단체들은 협상을 위해 보편요금제를 이통사 자율로 출시하는 방안까지 양보했다”며 “하지만 이통사들은 ‘통신비 인하가 필요하다’는 근본 전제까지 부인하며,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날 시민·소비자단체 대표들은 이통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회의 중간에 모두 퇴장했다. 한 정책협의회 관계자는 “그동안 이통사들은 수세적인 태도를 보여왔고, 잠깐 보편요금제 자율 출시 방안도 고민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이날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통사들이 정책협의회 논의 내용이 국회에 제출돼 입법 과정에 참고자료로 사용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통사들의 태도 돌변은 향후 국회에서 공방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포석이라는 의미다. 정책협의회는 오는 22일 마지막 회의를 연 뒤, 그동안의 논의 내용을 정리해 3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후 보편요금제 방안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규제개혁위원회 등 정부내 절차를 거쳐 오는 6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통사의 완강한 태도에서 예상되듯, 보편요금제의 입법 과정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주요 규제를 신설할 때 거쳐야 하는 심의기구인 규개위가 1차 관문이다. 규개위는 지난해 11월 이통사들의 반대의견을 받아들여, 기초연금을 받는 고령층에 대한 요금감면 방안에도 제동을 걸었다. 규개위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된다 해도 평소 ‘시장자율’을 중시하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국민들의 통신비 인하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시민단체들도 지지하고 있으니 국회도 이를 외면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진걸 사무처장도 “야당이 계속 거부하면 여론의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보편요금제의 운명은 6월 지방선거 이후 여야 관계, 정부·여당의 입법 의지, 통신비 인하에 대한 여론의 압박 정도 등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보편요금제는 가을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 상반기에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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