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His 스토리] 조 바이든, 대선 출마설…'비극의 가족사' 재조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 바이든(Joe Biden) 전 미국 부통령의 대선 출마설이 다시 불거졌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18일(현지 시각) ‘펜 바이든 외교-글로벌 관여센터’에서 자신의 외교정책보좌진들과 만나 “아직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2020년 (대선출마) 선택에 실제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P는 보도했다.

조선일보

조 바이든(앞) 전 미 부통령이 2017년 1월 12일 미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뒤) 전 미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블룸버그


바이든은 지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 간 오바마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퇴임 때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영예의 훈장인 ‘자유 훈장’을 수여받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바이든을 “공직자로서 탁월한 업무를 수행해 온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사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바이든의 ‘비극적 가족사’는 그의 정치 생애만큼이나 유명하다.

◇ 말더듬이 소년, 미 최연소 상원의원으로…부인·딸 사고사, ‘비극의 가족사’ 시작

바이든은 1942년 11월 20일, 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에서 자동차 세일즈맨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이든은 말더듬이였다. 그는 거울 앞에서 시 낭송을 반복했고, 가능하면 많은 대중 연설에 나서면서 핸디캡을 극복했다고 고백했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뒤 시러큐스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바이든은 1970년 뉴캐슬 카운티 위원회 의원으로 선출돼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년 뒤 1972년 민주당 소속으로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바이든의 경쟁자였던 공화당 후보는 델라웨어주 현직 상원의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전이었다. 바이든은 만 29세의 젊은 나이에 미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현대 미국 역사상 최연소 상원의원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에게 곧 큰 시련이 닥쳤다. 선거가 끝나고 약 한달 뒤, 바이든의 부인 닐리아 헌터와 세 자녀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인과 13개월 된 딸은 죽었고,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조선일보

조 바이든(가운데) 전 미국 부통령이 1973년 1월 3일 자신의 큰 아들 보 바이든(오른쪽 아래)이 입원한 병실에서 상원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미 상원 홈페이지 캡처


바이든은 충격으로 정치 생활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주변의 만류와 도움으로 정치 인생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바이든은 1973년 1월 3일 큰 아들이 입원한 델라웨어의 병원 병실에서 상원의원 선서를 했다. 그 후 바이든은 두 아들의 곁을 지키기 위해 매일 델라웨어와 워싱턴 DC 사이를 기차를 타고 통근했다. 두 아들은 회복됐고, 바이든은 1977년 재혼했다.

바이든은 첫 상원의원직에 오른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사법위원회를 거쳐 외교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바이든은 36년 간 유력한 정치인으로 성장했지만, 대통령직과는 연이 없었다. 그는 1988년 처음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 그러나 연설 표절 논란으로 중도 하차했다. 이어 2008년 다시 대권에 도전했지만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밀려 일찌감치 경선을 포기했다.

◇ 오바마 정권 부통령 역임…큰 아들은 암으로 사망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정치 2막을 시작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바이든은 2009년부터 8년 간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바이든은 부통령직을 역임하는 동안 말실수를 자주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13년 1월 19일 조 바이든은 2기 오바마 행정부 취임 기념 파티에서 자신을 ‘대통령’이라고 지칭했다. 관객들이 크게 웃으며 박수와 환호를 보내자 그제서야 실수를 알아챈 바이든은 손을 내저으며 “미국의 부통령이라서 자랑스럽다”고 정정했다. 미국의 소리(VOA)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바이든을 ‘조 아저씨(Uncle Joe)’라고 부르며 인간적인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조선일보

조 바이든(왼쪽) 전 미 부통령이 2008 년 8월 27일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큰 아들인 보 바이든(오른쪽)을 껴안고 있다. /블룸버그


그러나 바이든은 2014년 또 한번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바이든의 큰 아들인 보 바이든이 뇌암에 걸린 것이다. 보 바이든은 민주당 소속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으로 2008년 이라크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 바이든은 2014년 발병한 거대교모세포종 뇌암으로 투병하다 46세의 나이로 2015년 5월 30일 사망했다.

보 바이든은 사망 전 아버지가 2016년 대선에 도전하길 바랐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민주당은 바이든의 지지율이 힐러리 클린턴보다 낮다는 이유로 그의 도전을 만류했다. 바이든은 결국 대권 도전을 또 포기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 2020년 대선 출마설 제기…“당선 가능성 높아” vs “고령 나이 우려”

트럼프 취임 이후 바이든이 2020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바이든은 각종 연설에 나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지난해 11월에는 회고록 ‘아버지 약속해요: 희망, 고난, 그리고 목적의 1년(Promise Me, Dad: A Year of Hope, Hardship, and Purpose)’을 출간했다. 회고록에는 큰 아들 보 바이든을 잃은 전후 개인사가 담겼다.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 비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바이든은 당시 NBC와 인터뷰에서 “나는 꽤 오래 배회했고,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며 “지금부터 1년 반 뒤의 상황을 누가 알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후 바이든의 대선 출마설은 더욱 불붙었다. 바이든은 지난해 11월 오프라 윈프리가 진행하는 ‘슈퍼 소울 선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 대통령이 아닌 것이 후회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선일보

조 바이든 전 미 부통령이 2017년 5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비버리힐스에서 열린 '밀켄인스티튜트글로벌컨버런스'(Milken Institute Global Conference)’에서 연설하고 있다. /블룸버그


바이든의 대권 도전 결과를 둘러싼 전망도 긍정적이다. 바이든은 지난해 11월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모닝컨설트와 공동으로 실시한 2020년 대선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46%대 35%, 11%포인트 차로 앞섰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5%포인트 앞선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보다 높은 수치다. 또 이 조사에서 민주당 당원들이 바이든을 차기 대선 후보로 지지한다는 비율은 78%로 샌더스를 앞섰다.

지난달 CNN과 리서치 기관인 SRSS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바이든은 57% 대 40%, 17%포인트 차이로 트럼프 대통령을 이겼다. CNN은 ‘버니 샌더스 55% 대 트럼프 42%’, ‘윈프리 51% 대 트럼프 42%’ 결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다만, ‘고령의 나이’가 바이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바이든은 2020년 77세가 된다. NBC의 여성 진행자 메간 켈리는 바이든과 인터뷰에서 “비평가들은 당신(바이든)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지적할 것이다”며 “당신은 이미 두번의 기회를 놓쳤다. (민주당의 주요 지지세력인) 블루칼라 유권자들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를 사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나이를 둘러싼 지적을 개의치 않고 답변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들(블루칼라 유권자)은 나를 더 사랑한다”며 “나는 ‘러스트 벨트(미 중서부 쇠락한 공업지대)’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들(블루칼라)이 겪고 있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선목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