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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영재학교 고1 학생, 입학 1년 뒤 '합격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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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학고, 지난해 입학한 고1 2명 내보내

두 학생 중3 2학기 네 과목 내신 성적 떨어져

'내신 하락' 이유로 합격 취소한 최초 사례

중앙일보

대전과학고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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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전과학영재학교에 입학해 1년간 학교생활을 해온 고1 재학생 2명이 최근 학교로부터 ‘합격 취소’를 통보받고 각각 검정고시와 일반고 전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두 학생의 중학교 3학년 2학기 성적이 학교가 정한 기준에 미달해 최종합격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전국 8개 영재학교 가운데 최종합격자의 중3 2학기 성적이 하락했다는 이유로 합격을 취소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전과학영재학교는 20일 행정소송을 거쳐 이 학교에 재학 중인 고1 학생인 A군과 B군에 대해 이달 28일부로 입학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두 학생은 중3이던 2016년 4월 대전과학영재학교에 지원했고, 같은 해 7월 최종합격 대상자로 선발된 바 있다.

현재 영재학교는 특목고·자사고·일반고 등 여러 고교 유형 가운데 신입생 선발 시기가 가장 빠르다. 4월 원서 접수를 시작해 1단계 서류평가, 2단계 영재성 검사, 3단계 캠프를 거쳐 7월이면 최종 합격자가 공지된다. 이른 입시 일정으로 인해 영재학교의 입시에는 통상 중학교 3학년 1학기 내신 성적까지만 반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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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장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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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학생들은 7월 영재학교에서 최종합격 통보를 받은 뒤 2학기에는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내신 성적 관리에 소홀한 반면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하거나 사교육을 통해 고교 과정 선행학습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A군과 B군 역시 2016년 대전과학영재학교로부터 최종합격 대상자로 선발된 뒤 2학기부터는 내신 성적보다 올림피아드 대회 준비와 고교 과정 선행학습에 집중했다. 그 결과 두 학생 모두 1·2학년에 비해 3학년 2학기에 4개 과목에서 내신 등급이 하락했다. A군 학부모는 “성적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영재학교 합격자들 사이에 흔한 일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학생은 같은 해 12월 대전과학영재학교로부터 최종합격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 측은 “중학교 3학년 2학기 학교생활이 불성실한 경우 불합격 처리하겠다는 내용을 입시요강과 공문, 문자 알림 등을 통해 수차례 알렸다”며 “이미 ‘3과목 이상 성적이 하락할 경우 불합격 처리할 수 있다’는 기준을 반복적으로 알렸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은 학생에 대해서는 불합격 처분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두 학생의 학부모는 즉각 법원에 ‘합격 취소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학부모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학교 측의 사전 고지가 구체적이거나 명확하지 않았다”며 판단했다. 가처분이 인용됨에 따라 A군과 B군은 지난해 대전과학영재학교에 입학해 현재까지 1년간 학급 반장을 맡는 등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본안 판결에서 법원은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불합격 처리 기준에 대해 학교 측의 사전 고지는 불분명했을 수 있으나, 추후 학교가 지속적으로 해당 사실을 알린 것을 토대로 절차적 타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추후 고지 등을 종합해보면, 학생·학부모가 3학년 2학기 성적 하락이 불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재학교는 학생 선발에 있어 고도의 재량권을 갖고 있으며, 중3 2학기 성적 하락을 이유로 최종합격을 취소한 것 역시 학교의 재량권 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에 두 학생의 학부모들은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A군의 학부모는 “학교가 사전에 공지한 입학전형은 총 3단계로, 서류심사-영재성검사-캠프가 전부였다”며 “이미 최종합격한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측이 중3 2학기 성적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4차 전형을 추가로 진행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B군 학부모 역시 “학교 측이 정해진 입학 요강과 다른 기준을 들이대 학생들을 탈락시킨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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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종로학원하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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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학영재학교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다른 영재학교와 영재교육을 표방하는 자율형사립고들은 “전례가 없는 결정”이라며 놀라워했다. 경기과학영재학교의 한 관계자는 “영재학교에 합격한 학생들이 중학교 3학년 2학기 학교생활에 소홀해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 왕왕 있었다”며 “이번 대전과학영재학교의 결정은 중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단위 자사고인 하나고 교사는 “이 같은 혼란의 본질적 책임은 학교 측이 입학전형 절차를 매끄럽게 운영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미성년자인 학생에게 전가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경수 대전과학영재학교 입학지원부장은 “가처분이 인용돼 두 학생이 입학할 당시, 향후 법원의 본안 판결에 따라 입학 취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내했다”면서 “두 학생의 입장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입시는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의해 공정하고 타당하게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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