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트럼프, 왜 총기 규제 강화 요구에 침묵하나

댓글 8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올해 들어 미국 학교에서 발생한 18번째 총기 난사 사고다. 총기 난사 사고가 터질 때마다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범인의 정신건강을 탓하면서 추가 규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 14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고교에서 범인인 퇴학생 니컬러스 크루즈가 AR-15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17명이 사망했다. AR-15는 18세 이상에게는 판매가 허용된 총기류다.

AR-15는 대형 총기 난사 범죄에 단골로 사용된 총기다. 지난해 10월 5일 라스베이거스 총격 난사 사건(58명 사망), 그 후 한 달 만인 지난해 11월 5일 텍사스주(州) 교회 총기 난사 사건(26명 사망)에서도 AR-15가 사용됐다.

AR-15는 군용 소총을 민간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가볍고 사용하기 편하다. 가격도 700달러(약 79만원) 정도로 저렴해 일반인이 사냥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AR-15는 지난 2016년 미국 총기 총 판매량의 4분의1을 차지했다.

플로리다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은 지난달 23일 발생한 미 켄터키주 마샬카운티고교 총기 난사가 발생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어나 더 큰 충격을 줬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번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 학생인 엠마 곤살레스는 17일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정치인들은 전미총기협회(NRA)로부터 기부 받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 우리는 총기 참사의 마지막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다른 생존자인 알렉스 윈드는 18일 “(미국에서) 19살이 술을 살 수 없지만, 전쟁무기인 AR-15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생존 학생들은 오는 3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총기 규제 촉구 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생존자가 아닌 다른 미 전국 고교생들도 소셜미디어에 ‘#미넥스트(#MeNext?·다음은 나인가?)’란 해시태그를 붙인 글을 올리며 총기 규제 강화 운동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도 지난 15일 트위터에 “우리는 오래 전 해결했어야 하는 총기규제법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며 총기 규제 필요성을 강력히 촉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지속해서 추진했다. 지난 2013년 공격용 무기와 고성능 탄창의 판매를 금지하는 총기 규제법 수정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미 상원이 부결했다. 2016년에는 총기 판매업자들에 대한 등록과 총기 구입자들의 신원조회를 대폭 강화하는 행정명령을 도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폐지됐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8년 2월 15일 미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플로리다 고교 총기 난사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블룸버그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범인의 ‘정신적 문제’만을 거론하며, 총기 규제 강화 요구를 회피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때도 범인의 정신 건강을 원인으로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와 대국민 연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범인의 정신적 문제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 연방수사국(FBI)이 2016년 미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의혹을 조사하는 데만 몰두하고 플로리다 사건을 제때 수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해 총격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말 동안 플로리다에 머물며 자신의 지인들에게 총기 규제와 관련한 의견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가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 머물며 클럽 회원들에게 총기 규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지난 18일 전했다. 이어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구매 의뢰인의 전과 전력과 정신이상 등 신원을 조회하는 시스템 개선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총기 규제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 규제에 침묵하는 배경에는 전미총기협회(NRA)가 있다. NRA는 약 500만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미국 최대 총기 로비 단체다. NRA는 미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정치 자금을 대면서 총기 규제 반대 로비를 펼치고 있다. 특히 NRA와 공화당의 관계는 밀접하다. NRA 정치후원금 상위 10위권은 모두 공화당 의원들일 정도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약 774만달러로 NRA 후원 규모 1위를 차지했고, 리처드 버 상원(공화) 정보위원장, 로이 블런트(공화) 의원, 톰 틸리스(공화) 의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NRA는 2016년 대선 당시 공화당 소속 트럼프 캠프에 1140만 달러를 지원했다. 반면, 총기 소지 규제를 주장했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캠프를 반대하는 활동에 1980만달러를 사용했다고 미 경제 전문 매체인 쿼츠(Quartz)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총기 소유에 우호적인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정신병력자들의 총기 구입을 제한했던 규정을 폐지했다. 또 공화당이 장악한 미 하원은 지난해 12월 총기 규제 완화 법안인 ‘컨실드 캐리(concealed carry)’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컨실드 캐리는 무기를 보이지 않게 휴대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으로, 지금까지는 컨실드 캐리 허가를 받은 주(州)를 벗어나 다른 주로 이동할 경우 해당 주의 허가를 다시 받아야 했다. 그러나 수정안이 발효하면 이미 컨실드 캐리 허가를 받은 사람은 다른 주에서도 이를 적용받을 수 있다.

조선일보

한 트위터 이용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왼쪽)와 에릭 트럼프(오른쪽)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치타 사냥을 한 뒤 찍은 사진을 비난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 가족의 ‘사냥’ 사랑도 재조명받고 있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 트럼프는 2010년 SNS에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사냥한 치타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려 비난을 받았다. 트럼프 형제는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기념한 모금행사에 그들과 함께 사냥이나 낚시를 할 수 있는 패키지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패키지 가격은 무려 100만달러(약 1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에서 미국인의 코끼리 ‘트로피 사냥’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2014년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인의 트로피 사냥을 금지했다. 트로피 사냥은 야생 동물을 사냥해 박제하는 등 전리품을 취하는 행위로, 상당한 비용이 든다.

그러나 미 동물단체 등이 트로피 사냥 허가를 극렬하게 반대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로피 사냥 재허가를 보류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8일 허프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트로피 사냥 재허가는 ‘끔찍한 것’이라며 이를 다시 금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선목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