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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갑질과 성폭력, 폐쇄된 공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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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하루가 멀다 하고 갑질과 성폭력에 관한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썩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내용도 충격적이다. 새로 보도되는 사건들이 많아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갑질과 성폭력은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도덕적이라고 믿었던 종교 기관, 대학·대학원 등 학교 캠퍼스는 물론이고 언론사, 정당, 법원, 경찰, 검찰, 문화단체, 시민사회단체, 군대, 기업 등 어디 한 군데 예외가 없다. 갑질과 성폭력의 피해자 역시 특정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있다. 국회의원과 자치단체 의원, 판검사, 기자, 교수, 장교 등 소위 주류 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갑질과 성폭력 피해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갑질과 성폭력은 본질상 같은 내용이다. 둘 다 특정 조직 내의 지위나 결정권을 악용한 권한 남용의 피해 사례들이다. 취직, 정규직, 진급, 보직, 부서 이동, 계약, 편의 제공 등을 미끼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약자에게 가하는 경제적·물리적·심리적 폭력이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자주 접하다 보니 갑질과 성폭력 같은 폭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역사의 어느 시기를 봐도 평등한 공동체는 없었고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은 늘 있어왔기 때문에 갑질과 성폭력 역시 불가피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책 몇 페이지만 넘겨도 사회적 약자의 피해 사례가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은 왕조시대도 아니고 독재시대도 아니다.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고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여전히 갑질과 성폭력 같은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주요 이유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이다.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제·정치적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누구나 조직 안에 들어가면 조직 안에서 경제적 안락함과 적절한 지위상승을 희망하게 되는데, 둘 다 쉽지가 않다.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둘 다 가능한 조직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상사의 판단에 순종하는 것이다.

문제는 상사의 판단이 불합리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근대사회의 사회적 조직들은 합리성에 기초한 업무처리시스템과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는데도 실제 여러 분야에서 비합리적 결정이 일상화하고 있다. 시스템은 근대적이지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결정권자와 그 대리인들은 여전히 폐쇄된 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다. 외부와 소통이 필요 없는 특정 공간 안에서 합리적 사회 규범과 무관한 자기만의 십계명을 만들어 놓고 왕 노릇을 하고 있다. 당연히 모순이 존재한다. 사회 시스템은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데 개별 조직들은 소통을 거부하면서 폐쇄된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왕 노릇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지금까지는 잘 유지돼 왔다.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내부의 부당한 행위가 외부에 알려지기 위해서는 내부 고발자의 용기와 적절한 미디어가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쉽지가 않았다. 힘들게 내부 비리를 폭로했지만 매스미디어가 받아주지 않거나 축소·왜곡 보도하면 고발한 사람은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인간성이 부족한 사회 부적격자가 된다. 매스미디어가 보도하는 경우에도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고발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내면의 공감화가 필요한데 한 번의 보도로는 가능하지 않다.

최근 갑질과 성폭력 사건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들이 적절한 미디어를 만났기 때문이다. 오래전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도 개인들은 참담함과 수치스러움을 느꼈고 폭로하고 싶었지만 적절한 미디어가 없었다. 폭로가 아닌 개혁을 위해서는 새로운 미디어가 필요했다. 이제 인터넷을 통해 개인들의 네트워크가 연결되면서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유통시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 공간이 기존 폐쇄공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들의 네트워크는 늘 불확실했고 일시적이었으며 심하게 편파적일 때도 많았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조금씩 의미 있는 미디어로 진화 중이다.

진화 중인 개인들의 네트워크가 기존 폐쇄공간을 폐쇄시킬지 또는 겉에서 노크하는 수준에서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이미 사회의 주요 조직들은 내부 규정이나 조직문화, 이해관계 등을 통해 철저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 반면 개인들의 네트워크는 항상 유동적이다. 그러나 이 유동성이 바로 개인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가상공간의 본질이다. 폐쇄공간과 달리 가상공간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고 흐르는 공간이다. 정보와 콘텐츠가 네트워크를 타고 계속 흐르면서 모든 폐쇄공간에 조금씩 스며들어 최종적으로 개방과 공유의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들에 의해 시작된 공간 싸움에 개인들이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김홍열 초빙 논설위원·정보사회학 박사

박상훈 bomna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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