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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文대통령, 美 보호무역 정면돌파? 통상압력 극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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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제소 카드 대미(對美) 메시지 성격도 담겨

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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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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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미국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5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과 관련해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한국 기업들이 큰 피해를 봤을 때 "실익이 없다"면서 WTO 제소 카드를 철회한 것과 비교하면 강경해진 대응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미국의 통상 압박에 국제사회의 룰을 끌어들여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는 대미(對美)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靑, WTO 제소 검토·FTA위반 점검 강경 모드 선회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철강, 전자, 태양광, 세탁기 등 우리 수출 품목에 대한 미국의 수입규제 확대로 해당 산업의 국제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수출 전선에 이상이 우려된다"며 "정부는 그러한 조치들이 수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달라"고 말했다.

또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나가고 한미FTA 개정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 상무부가 지난 16일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최소 24%의 관세 부과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작년 대미 수출의 63% 수준의 쿼터 설정 △한국, 중국, 브라질 등 12개국을 대상으로 최소 53%의 관세 부과 등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세 가지 방안을 백악관에 보고한 데 대한 대응 차원으로 해석된다.

또 국내 기업의 대미 철강 수출품의 약 80%가 이미 반덤핑·상계관세 부과 대상이 된 상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가 관세 53% 부과안에 서명할 경우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은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혁신성장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한편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을 통해 수출을 다변화하는 기회로 삼아나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미, 대중(對中) 무역 편중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체질 개선을 주문하면서, 한미동맹 등 안보 영역에 연동돼 침해받을 수 있는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내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다진 것으로도 읽힌다.

앞서 지난해 청와대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WTO 제재 실익을 따지며 저강도 대응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작심해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14일 박수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지금은 북핵·미사일 도발로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한중 간의 어려운 문제는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더욱 강화하며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며 WTO 제소 카드를 철회했다.

◇ 안보·통상은 별개의 수레바퀴라지만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한미동맹 등 안보 문제와 통상 등 경제문제를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생각은 안보의 논리와 통상의 논리는 다르다는 것"이라며 "서로 궤도를 달리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WTO 제소 문제는 국제법과 관세법에 근거해서 해볼 수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를 하자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과의 통상을 놓고 (현 정부의) 기조가 바뀌었다기 보다는 그동안은 이번처럼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의 문제가 안 드러났다"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기존의 입장이 발현한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화해 무드를 북미 접촉으로 이어가려는 문 대통령의 '안보' 구상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이익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아메리카 퍼스트' 행보를 보임에 따라 청와대가 적극 대응으로 기조변화를 꾀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지난해 6월 첫 한미 정상회담 불씨가 발화(發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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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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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과 자동차 무역불균형에 대한 미국측의 요구는 지난해 6월 워싱턴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문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마친 뒤 확대 정상회담이 열리는 백악관 내 캐비닛 룸(Cabinet Room)에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까지 배석시켜 통상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 예정에도 없던 양국 기자들까지 불러들여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 축소와 미국산 자동차 수출장벽 해소, 한국산 철강 덤핑 문제를 제기하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미국은 많은 나라와 무역적자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한국과 바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배석한 윌버 로스 상무장관도 "(미국 입장에서는) 유정용 파이프와 철강 제품 수입 문제인데 한국은 이 시장이 없기 때문에 전량 수출하고 있다"며 덤핑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과 장하성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은 중국에서 수입한 철강 제품을 재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5%가 되지 않는다며 미국측의 철강 반덤핑 문제를 적극 해명했다.

하지만 8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에 이어 철강 제품에도 고율의 관세 부과 움직임을 보이면서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최근 마련된 미 상무부의 자국 철강산업 보호 조치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발화된 셈이다.

◇ 文, WTO 제소 카드 빼들었지만 실익은?

문 대통령이 이날 WTO 제소 등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당장 국내 철강산업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WTO 제소까지 이어져 승소를 한다해도 시간이 2년 이상 걸리고, 승소 이후 미국의 제재가 풀린다하더라도 국내 철강산업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을 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이날 강경 발언이 일종의 대미(對美) 메시지 성격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오준범 선임연구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단은 제소는 하는 방안으로 가야할 것 같다"며 "협상 국면에서 대화로 풀어나가면서 우리나라가 내줄 건 내주고 이점으로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오 연구원은 "국제 사회를 향해 국제 협약이나 WTO 등과 관련해 발언하는 게 좋다"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경우 중국이나 인도 등 대미 수출이 많은 나라들끼리 공조가 되고 압박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에서 농산품이나 자동차 등 무역적자 줄이기에 나서면서 철강 문제를 지렛대로 삼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도 또다른 지렛대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에 이어 철강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해당 제품의 미국 내 가격상승은 불가피해 물가상승은 물론 미국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등의 부작용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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