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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사설] 中엔 침묵하고 美에 결연히 대응한다는 文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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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에 대해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WTO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했다. 수출 다변화로 미국 의존을 줄이라고도 했다. 청와대는 '안보'와 '통상'을 별개로 갖고 간다는 것이 문 대통령 생각이라고 했다. 안보 협력과는 별도로 통상 이슈에선 강경 대응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는 미국의 통상 보복 조치가 국제 통상 규범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으면 WTO에 제소해야 한다. 한·미 FTA의 무(無)관세 정신에 위배되는지 여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WTO 규범은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운 '국가 안보'엔 관세 보복을 허용하고 있다. 설사 제소해서 이긴다고 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려 피해 회복은 불가능하다. 한·미 FTA의 분쟁 해결 절차도 마찬가지다. 모두 실효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다.

'당당하고 결연하게'는 안보나 정치에 쓰이는 수사이지 경제 문제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이해득실을 주고받는 경제 논리에는 당당한 것도 결연한 것도 없다. 협상의 결과로 손해를 줄이고 이익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다. 중규모 개방 국가인 한국의 통상 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익'이어야 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미국과 트럼프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에 대해 왜 이러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의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각에선 중국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상대이고, 일본과는 정상끼리 친밀한 관계여서 이도저도 아닌 한국이 희생양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전에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트럼프 정부는 보호 무역 공세를 예고하고 출범했다. 그런데 한국 새 정부가 대미 통상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비상하게 대응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정부가 무엇 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자 갑자기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한다고 한다. 미국과 강 대 강으로 충돌할 경우 손에 쥔 통상 카드가 열세인 우리 쪽이 결국 손해볼 수밖에 없다. 감정 섞인 대응을 자제하면서 미국 측을 이해시켜서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일본이 해내고 있다.

사실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은 중국의 사드 보복 때 나왔어야 했다. 사드 보복은 우리 군사 주권과 안보 전략에 개입하려는 압박이었다. 새 정부는 중국에 항의 한번 제대로 한 일이 없다. 당시 중국의 보복은 명백한 WTO 규정 위반이었지만 끝내 제소하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보다 국력이 압도적으로 큰 미국을 상대로는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겠다고 한다. 중국이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을 이용해 압박할 때는 침묵하다 미국을 상대로는 수출 다변화를 한다고 한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넘어진다.-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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