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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지출은 죄"… 휴대전화도 쥐어짜는 2030 짠돌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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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출시된 인기 애플리케이션(앱) '생존 가계부'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내려받았다. 생긴 지 3년 미만의 신생 가계부 앱 중 내려받기 실적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성과다. 이 앱은 여느 가계부 앱처럼 지출 내역을 분석한 통계나 그래프가 없다. 기능은 단순하다. 가진 돈과 생존해야 하는 기간을 입력하는 것이 전부다. 사용자는 돈이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금액을 적는다. 잔고가 줄면 풍성하던 나뭇잎이 하나둘 사라진다. 생존해야 하는 기간 전, 돈을 다 써버리면 나무는 가지만 남은 채 앙상해진다. 앱은 "생존을 포기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1년 가까이 생존 가계부를 쓰고 있는 직장인 주모(27)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에겐 필수적인 앱"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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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사이에 '짠테크' 확산 중

최근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짠내 재테크(짠테크)'가 확산되고 있다. 짠테크는 말 그대로 '짠내' 폴폴 풍기며 한 푼이라도 아끼고, 최대한 안 쓰면서 아득바득 돈을 모으는 극단적인 자산 관리법이다. 최악의 취업난에 오랜 기간 백수로 지내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는 습관이 몸에 밴 'N포 세대(연애·결혼·취업 등을 포기했다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조어)'의 눈물겨운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수입은 78만1600원으로 전년 대비 3.1% 줄었다. 최근 3년간 13만원가량 쪼그라들었다. 연소득이 1000만원 미만인 30세 이하 가구는 2013년(4.4%) 이후 4년째 늘고 있다(2016년 8.1%). 생존 가계부 앱을 개발한 윤우민(25)씨는 "돈을 아껴 쓰려고 가계부 앱을 찾아봤더니 절박한 이들에겐 쓸모없는 기능이 많았다"며 "당장 생존이 문제가 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단순한 가계부 앱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달 만에 개발했다"고 말했다.

눈물겨운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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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청년은 빚까지 내서 가상 화폐에 투자하는 '모 아니면 도' 식 자산 증식을 꾀하는 데 반해 '짠테커'들은 안 써도 되는 모든 것을 판다. '휴대전화 데이터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조모(25)씨는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매달 2GB(기가) 정도의 데이터를 판매한다. 거래 가격은 1기가에 3000원 정도. 한 달에 6000원가량을 버는 셈이다. 조씨는 "월 5만원 조금 넘는 요금제를 쓰는데 3.5기가의 데이터가 포함돼 있다"며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선 무조건 데이터를 끄고 아껴 써서 2기가 정도는 확보해둔다"고 말했다. 조씨처럼 휴대전화 데이터를 팔겠다고 글을 올린 사람이 이 카페에만 하루 평균 1000여 명에 달한다.

짠테커들은 적은 돈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다. 대학생 A씨는 최근 1200원짜리 과자를 공짜로 받기 위해 2분 정도 걸리는 경품 이벤트에 참여했다. 간단한 게임을 하면 과자 기프티콘을 주는 것인데 130회나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 그는 이렇게 얻은 과자 교환권을 기프티콘 거래 플랫폼에 1000원을 주고 팔았다.

저성장 사회의 단면

짠테크를 인생의 모토로 삼는 인터넷 카페도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2007년 문을 연 네이버 카페 '짠돌이 부자되기'는 현재 회원 수가 12만명을 넘는다. 회원들은 '쓸 만큼만 돈 챙겨 다니기' '(충동구매 욕구가 들면) 물건을 두고 달아나 보기' 등의 내용이 담긴 '십계명'을 세우고 철저히 짠테크를 추구한다. 전문가들은 짠테크의 확산을 저성장 사회의 한 단면으로 보고 있다. 김규형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소득 기반이 취약해졌기 때문에 '짠테크'가 각광받고 있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제는 장기 불황으로 접어드는 가장 위험한 징후"라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oasis@chosun.com);송승섭 인턴기자(중앙대 역사학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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