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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날짜 분산-전자투표제 도입… 주총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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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한화-LS 등 ‘선진 주총’ 실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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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주주총회 시즌 때마다 나오던 ‘슈퍼 주총 데이’ 논란이 올해는 일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전자투표제와 주총 분산 개최를 잇달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 주총 데이란 주요 상장사 정기 주총이 동시에 몰린 날을 말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주총 개최일의 80%가 3월 21∼31일에 몰렸다. 특히 금요일(70%)이 가장 많았고 오전 9시와 오전 10시가 90%였다. 2016년에는 금요일이었던 3월 25일에 814곳이 정기 주총을 열었고, 지난해에도 상장사의 절반이 넘는 928곳이 3월 24일(금)에 주총을 열었다.

여러 회사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슈퍼 주총 데이에 주총 현장을 한 개 이상 챙길 수 없게 된다.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견을 낼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주주로서의 권리를 뺏기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안으로 거론돼 온 게 주총 분산 개최와 현장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모바일 등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였다.

SK그룹은 4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다음 달 열릴 주요 계열사들의 주총을 분산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전자투표제도 도입한다. 앞서 지난해 주요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던 한화그룹도 올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계열사를 늘리는 한편 계열사들 간에 서로 겹치지 않게 주총 일정을 잡겠다고 예고했다.

한화 관계자는 “지난해 한화케미칼과 한화투자증권 등 일부 계열사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지만 참여율은 1%가 채 안 됐다”며 “올해는 다른 계열사들로 확대 적용하기로 했고 다른 기업들도 동참하는 만큼 좀 더 의미 있는 참여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SK와 한화는 주주들에게 주총 통지문을 보낼 때 전자투표제 안내 문건을 별도로 첨부하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LS그룹 역시 계열사들에 주총 분산 개최를 권고했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주총 분산 개최와 전자투표제를 꺼려온 것은 소액주주의 결집에 부담을 느낀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올해부터 섀도보팅(Shadow Voting·소액주주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주총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못 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도입 분위기가 생겨났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2016년 발의된 상법개정안 속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도입되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의무화에 대해 중소기업은 비용 문제를, 외국인 주주 비율이 높은 일부 대기업은 국외 자본의 경영권 침탈 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해킹이나 명의 도용 등 보안 리스크도 있어서 미국 등에선 기업의 책임 아래 자율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전자투표제는 찬반 또는 기권 외에 토론이나 질문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PC나 모바일 사용이 익숙지 않은 고령층이나 저학력층은 접근하기 어렵다는 평등권 논란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전자투표제를 법으로 의무화한 나라는 외국인투자가 비중이 70%를 넘는 터키를 비롯해 인도 대만 등 주식 시장이 크지 않은 국가들뿐이다.

미국에서는 온라인으로만 주총을 개최하는 전자 주총 등도 시도됐지만 이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었다. 2015년 HP가 참석률을 높이고 주총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온라인 주총만 열자 시민단체들은 “실적 부진 등에 대해 주주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거나 비난받는 기회를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결국 어느 제도나 장단점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방법론에 대한 고민보다는 의사정족수 등 주총 결의 요건부터 합리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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