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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엑소·워너원·이니도 떴다 … 팬심 바로미터 지하철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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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곳곳 ‘아이돌 광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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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학생이 지난달 21일 서울 지하철 삼성역에서 NCT 멤버 유타를 응원하는 광고를 촬영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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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도경수(엑소의 멤버)다.” 여학생 4명이 황급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켰다. “문빈(아스트로의 멤버)은 저기 있다 저기.” 또 다른 여학생 무리는 한 명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우르르 뛰어갔다. 아이돌 팬미팅 현장 같은 이 곳은 ‘지하철역’이다.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 통로 안에서 펼쳐진 모습이다. 여학생들이 열광한 건 실제 아이돌이 아닌 ‘아이돌 응원 광고’. 삼성역 벽면에 걸린 조명광고(가로 4m, 세로 2.25m) 16개 중 10개가 아이돌의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 등을 축하하는 광고였다. 지난 8일 오전 다시 찾은 삼성역의 조명광고는 2월 생일을 맞은 아이돌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작년만 1038건 “비수기 없이 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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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팬이 제작한 강다니엘의 지하철역 광고 위치 지도. [그래픽 디시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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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역에 ‘아이돌 응원 광고’가 급증하고 있다. 아이돌의 ‘팬’들이 비용을 대고 내는 광고들이다. 이런 광고가 늘면서 지난달엔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가 광화문역 등 10개 역에 등장해 찬반양론이 나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8호선 지하철역에 걸린 아이돌 응원 광고는 1038건이었다. 2016년 400건에 비해 약 2.6배 늘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아이돌 생일은 매월 있지 않으냐. 아이돌 광고는 비수기 없이 꾸준히 들어오는 ‘효자 광고’”라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서울교통공사에 의뢰해 파악해보니 지난해 아이돌 광고가 많이 걸린 지하철역 1위는 ‘삼성역’(200건)이었다. 건대입구역(91건)·합정역(84건)·잠실역(66건)·홍대입구역(60건) 등이 뒤를 이었다. 유동인구가 많고 아이돌의 기획사·숙소 등과 가까운 역이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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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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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광고 기획자이자 생산자 역할

서울 지하철역에 아이돌 광고가 등장한 건 2011년 무렵이다. 하나둘씩 늘어가던 아이돌 광고는 옥외 디지털 스크린, 시내버스, 버스 정류장 등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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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외부에 붙는 아이돌 응원광고도 증가하고 있다.[사진 국가대표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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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엑소의 광고비를 세 차례 댄 고교생 채모(18)양은 “공공장소에 광고를 내거는 건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인지도를 높이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팬은 이제 ‘기획자’이자 ‘생산자’가 되고 있다. 팬이 주도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대중에게 알린다는 점에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대상(아이돌)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라고 설득하는 심리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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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역에는 2월 생일을 맞은 아이돌들을 축하하는 광고가 걸려 있다. 임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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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광고가 있는 지하철역은 팬들에게 ‘투어 코스’로 떠올랐다. 지난달 21일 삼성역에서 만난 중학생 최가은(16)양은 이날 강원도 홍천군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최양은 “워너원 이대휘의 광고가 걸린 지하철역을 돌아보려고 왔다. 이제 합정역·이태원역이 남았다”고 말했다. 삼성역 역무원 윤모(50)씨는 “주말과 방학 땐 하루에 150명 안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인물 광고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아이돌 광고는 점차 다른 지역에서도 보이고 있다. 부산 지하철 서면역에는 아이돌 그룹 스트레이 키즈 멤버 양정인의 생일 축하 광고가 걸려있다. 지난 13일부터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에는 방탄소년단 슈가의 생일 축하 광고가 걸렸다. 분당선 서울숲역과 3호선 정발산역 등과 같이 경기 지하철역에도 지난해 아이돌 광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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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철 서면역에는 아이돌 그룹 스트레이 키즈 멤버 양정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가 걸려있다.[사진 부산교통공사]


직장인 고모(55)씨는 “중학생 시절 가수 혜은이에 팬레터 10통을 쓴 경험이 있다. 같은 마음이 표현 방식만 새로워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진철범(28)씨는 “공공장소에 아이돌 광고가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을 해왔다. 개수 제한을 두고, 공익광고의 수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물 광고’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곽금주 교수는 “인물 광고는 주목도가 높아 과도하면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공장소 인물 광고의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인 광고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영·황선윤·김윤호·최모란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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