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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상에서 나락으로…연희단거리패 막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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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윤택 주축 30년 역사 ‘연극공동체’

다양한 스펙트럼·대중극과의 접목으로

오랜 세월 주목받았지만 파국 초래

“폐쇄적 문화, 사건 은폐 역할까지…

연극계 성폭력 뿌리뽑을 계기돼야”



한겨레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과거에 저지른 성추행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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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상주의 연극공동체’로 불렸던 연희단거리패가 연극계 구조적 성폭력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며 마침표를 찍었다. 이윤택 전 예술감독뿐 아니라 다른 극단 인사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증언도 에스엔에스(SNS)에서 터져나온데다 일부 단원들은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은폐에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전 감독이 연극계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은 물론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19일 “선배들이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하고, 또 돌이킬 수는 없는 문제이기에 연희단거리패가 해체돼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선언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부산 가마골소극장, 밀양연극촌 모두 문을 닫기로 결정해 연희단거리패의 영광이 서렸던 공간들도 사라진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1986년 부산 광복동에서 시작된 이래 연희단거리패는 30여년 동안 꾸준히 문화계 안팎에서 조명을 받아왔다. 언론인 출신인 이 전 감독은 연극계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부산에서 가마골소극장을 열고, 단원 12~13명을 이끌면서 연극에 도전했다. 이 전 감독이 이끈 거리패는 초기작 <죽음의 푸가>, <히바쿠샤> 등부터 실험적인 형식으로 관심을 모았다. 1988년에 서울 대학로에도 진출한 거리패는 <산씻김>, <시민케이(K)> 이후 <바보각시>, <우리 시대의 리어왕>, <허재비놀이>, <원전유서> 등의 사회극을 무대에 올렸다. 특히 1999년엔 1980년 광주의 아픔과 지식인의 고뇌를 다룬 <시민케이>로 영희연극상을 수상하는 등 찬사를 받았다. 거리패는 고전과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오구>, <바보각시>, <시골 선비 조남명>, <아름다운 남자>, <햄릿>, <허재비놀이>,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코마치후덴>, <피의 결혼>, <오이디푸스>, <오레스테스 3부작> 등이다. 틈틈이 아동극·전통극 등 다양한 형식의 연극도 무대에 올렸다.

1999년 거리패는 또 한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연극 공동체’를 지역에 꾸리면서다. 거리패는 연극 <어머니> 공연 뒤 경남 밀양시의 지원으로 밀양연극촌을 건설했다. 연극촌은 연극 단원을 발굴·교육하고 자급자족하는 곳이었고, 60여명이 함께 연극을 배우고 연습한 것으로 알려진다. 연극촌 단원들은 매년 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무대에 올랐다. 많은 배우들이 거리패를 거쳐갔다.

오랜 세월 동안 거리패의 ‘꼭두쇠’는 단연 이 전 감독이었다. 거리패의 창작활동과 교육 등 모든 방면에 관여했다. ‘전방위 예술가’ ‘문화게릴라’ 등의 별명으로 불린 그는 1986년 대종상 각본상을 시작으로, 200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연극무용부문), 2007년 동아연극상 등 각종 연극계 상을 휩쓸었다. 영산대·성균관대·서울예대·동국대에서 연극을 가르쳤고, 국립극단 예술감독, 서울예술단 대표 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한국 연극계에서 늘 주목받았던 이 전 감독과 거리패의 몰락은 연극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김일송 평론가는 “이 전 감독과 거리패처럼 오랜 기간 왕성하게 활동하는 극단이 드물었다. 작품 스펙트럼이 넓었고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 줄타기를 잘했다는 평가가 나왔던 극단이다. 공동체 문화도 누군가에게는 이상적 모델로 비치기도 했다”면서도 “이번 사태를 보고 연극계 모든 분들이 처참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폐쇄적 연극 공동체가 사건 은폐에 역할까지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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