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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소피아가 알려준 로봇시대 취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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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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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0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박영선 의원 주최로 기자들과 카메라가 운집한 가운데 콘퍼런스가 열렸다. ‘4차 산업혁명, 소피아에게 묻다’라는 이름의 콘퍼런스였지만 발표 논문을 실은 자료집은 물론 최소한의 형식을 갖춘 발제도, 토론도, 질의응답도 없었다.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받은 로봇이라는 소피아가 어색하게 한복을 입은 채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언론에 행사 소개와 사진이 실리기 위한 전형적인 미디어 이벤트였다.

소피아는 홍콩 회사 핸슨로보틱스의 대표 데이비드 핸슨 박사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이다. 시나리오 없이 사람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과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표정을 짓는 게 특징이다. 소피아의 대화 수준은 음성비서나 챗봇과 다르지 않지만, 사람 모양이라는 점과 오드리 헵번 얼굴을 모델로 했다는 것에 미디어와 대중이 현혹되었다. 소피아가 박 의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은 로봇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것처럼 포장돼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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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봇이 재치있게 대화할 줄 안다고 시민권을 부여하고 방송 토크쇼에 출연시키고 정책 홍보에 활용하는 행위가 생겨나고 있다. 이번 이벤트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사회가 직면할 위험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자리였다. 특별한 것 없는 로봇이라도 생김새나 발언 내용으로 감성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애정과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보편화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어펙티바는 97개국에서 수집된 600만장 넘는 얼굴 사진 데이터베이스에서 감정을 인식하는 작업을 하는 감성컴퓨팅 기업이다. 슬픔, 기쁨, 공포, 불안 등의 감정 상태를 기계가 파악할 수 있으면, 사람이 명령하지 않아도 기계가 사람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어펙티바의 창업자 라나 엘칼리우비는 앞으로 5년 안에 이러한 감성 인공지능의 출현을 확신하고 있다. 사람이 운전이나 학습 과정에서 피로나 좌절감을 느끼는 상황을 감성 인공지능이 파악할 수 있다면 서비스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감성 컴퓨팅의 발달은 감정적 존재인 인간 심리의 취약점을 활용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중대한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에 이어 인간 심리 취약성을 사업모델로 삼는 기술의 등장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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