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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외국보다 작고 약하다?…담뱃갑 경고그림, 어떤 게 효과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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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판매중인 담배 제품에 다양한 종류의 경고그림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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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큰 구멍이 뚫린 후두암 환자, 엄마가 피우는 담배 연기에 노출된 태아…. 2016년 12월 처음 시행된 담뱃갑 경고그림의 일부다. 총 10가지 종류로 구성된 경고그림은 흡연의 폐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담뱃값 인상이 가격을 조절하는 금연 정책의 핵심이라면, 경고그림 부착은 비가격 정책의 첫 번째로 꼽힌다. 도입 초반에는 그림이 안 보이게 거꾸로 진열하거나 스티커ㆍ케이스로 그림만 가리는 ‘꼼수’가 많았다. 하지만 도입 1년을 넘어서면서 ‘담뱃갑=경고그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올 12월에는 새로운 경고그림이 찾아온다. 금연 효과 극대화를 위해 2년 간격으로 그림을 바꾸기 때문이다. 민ㆍ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경고그림 제정위원회’에선 현재의 10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반적인 표현 수위를 높이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나치게 혐오스러워선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을 감안하면서도 신규 흡연자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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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담뱃갑 경고그림 표기 규정.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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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안이 4월께 나오면 정부가 이를 검토해 6월까지 최종안을 고시하게 된다. 장영진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사무관은 ”경고그림을 전부 바꿀지, 일부만 손댈지는 위원회와 정부 논의가 진행돼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고그림은 폐암ㆍ뇌졸중 등 질병과 관련된 5종, 성 기능 장애ㆍ간접흡연 등 비질병 주제 5종으로 각각 나눠진다. 그림마다 표현하는 상황, 주요 대상층이 다르다 보니 시각적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 보기만 해도 흡연 욕구가 사라지는 그림이 있는 반면 ‘이것쯤이야’라는 생각부터 드는 그림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경고그림이 올 연말 살아남고, 사라질까.

보기 힘든 그림이 효과도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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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 경고그림 효과에 대한 평가 결과.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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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료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복지부 산하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2~3월, 5월 두 차례에 걸쳐서 실시한 설문조사다. 성인ㆍ청소년 2427명에게 담뱃갑 경고그림의 효과를 물어본 결과다.

담뱃갑은 경고그림이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금연 효과를 가졌다. 비흡연자가 흡연을 시작하는 걸 막는 효과는 경고 문구만 있는 기존 담뱃갑이 5점 만점에 2.9점에 그쳤다. 반면 경고그림을 부착했을 때는 4.03점(1차 조사)으로 대폭 뛰었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비흡연 성인의 81.6%, 비흡연 청소년의 77.5%가 ”앞으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개별 그림에 따른 효과는 엇갈렸다. 대체로 흡연에 따른 질병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 그림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아동과 임신부 등 대상별로 흡연의 폐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비질병 주제는 상대적으로 효과가 낮게 나왔다. 그림의 혐오도가 강할수록 ‘각인 효과’가 나타나서 금연의 폐해를 더 생생하게 느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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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고그림들.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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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성이 제일 높은 경고그림은 구강암(성인, 3.97점)과 후두암(청소년, 3.8점)으로 집계됐다. 성인은 구강암-후두암-심장질환, 청소년은 후두암-구강암-심장질환의 순이었다. 모두 환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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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고그림들.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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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교체가 필요한 그림 1순위로는 피부노화(성인, 46.2%)와 뇌졸중(청소년, 46.5%)이 각각 꼽혔다. 성인은 성 기능 장애ㆍ간접흡연, 청소년은 피부 노화ㆍ간접흡연을 그다음으로 택했다. 이들 그림은 담배 연기 등으로 흡연의 폐해를 상징한 것들이다. 장영진 사무관은 ”경고그림 제정위원회에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했기 때문에 그림 교체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림 면적 늘려야" 의견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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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 경고그림 적절한 면적에 대한 조사 결과.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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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수위만큼 면적도 금연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래도 그림이 클수록 눈에 잘 띄는 반면, 면적이 적다면 그림에 대한 혐오도도 반감되기 쉽다.

현재 국내 담배 제품의 경고그림 표기 면적은 50% 이상이다. 그마저도 경고문구(20%)를 뺀 순수한 그림 면적은 30%에 그친다. 이에 대해 성인 10명 주 3명(29.9%), 청소년 10명 중 4명(38.3%)이 면적이 좁다고 답했다.

응답자 대부분은 지금보다 경고그림의 효과를 높이려면 면적을 더 키워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담뱃갑 면적의 80%가 적당하다는 의견은 성인(27.6%), 청소년(29.2%) 모두 가장 많았다. 담뱃갑 전체에 경고그림과 문구를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성인ㆍ청소년에서 각각 17%, 17.3%씩 나왔다. 반면 현행 기준이 적당하다는 비율은 성인 24.6%, 청소년 17.1%에 그쳤다.

다만 올해 안으로 경고그림 면적이 커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국회에서 건강증진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법안 논의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정부도 경고그림 면적을 당장 키우기보단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고그림 종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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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담뱃갑 면적의 절반을 경고그림과 문구로 채울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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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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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진열된 담배 제품들. 담뱃갑의 90%를 채운 커다란 경고그림이 두드러진다. [사진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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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그림 도입이 ‘신생아’ 단계인 한국과 비교해 외국은 전반적으로 그림이 크고 표현도 강한 편이다. 담배 회사가 담뱃갑을 일종의 '광고판'으로 활용해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다는 취지에서다.

2016년 공개된 캐나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네팔ㆍ바누아투는 담뱃갑 앞뒷면의 90%를 경고그림으로 채워야 한다. 담배 제품을 광고할 공간이 사실상 전혀 없는 셈이다. 호주(82.5%), 캐나다(75%), 유럽연합(65%) 등 선진국들도 우리보다 경고그림 면적이 더 넓은 편이다. 50%인 한국은 공동 57위에 그쳤다. 담뱃갑 경고그림을 쓰는 105개국(지난해 5월 기준) 중 한국보다 면적이 작은 곳은 17개국에 불과하다.

외국도 그림 면적이 커질수록 흡연의 위험성을 더 잘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지난 2008년 캐나다에서 성인ㆍ청소년에게 설문한 결과 면적 커질수록 흡연 인식 개선과 흡연 예방, 흡연자 금연 유도 효과 등이 모두 높아졌다. 또한 2010년 그림을 50%에서 80%까지 키운 우루과이는 확대 후 그림의 가독성, 금연 유도 효과 등이 높아졌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그림의 수위도 마찬가지다. 재떨이에 놓인 채 숨진 태아(브라질), 썩어들어간 발(영국)처럼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가 훨씬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폐해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폐암과 후두암 같은 암의 환부도 그대로 노출하는 편이다. 경제적 부담(자메이카 등), 치아 변색(호주 등), 실명(캐나다 등) 같이 한국에서 아직 채택하지 않은 주제도 다양하다. 그러면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많이 쓰는 경고그림 주제는 뭘까. 국내 연구에 따르면 임신ㆍ태아가 54개국 83개로 최다였다. 그 뒤로 (조기)사망과 폐암, 성 기능장애 등이 뒤를 이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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