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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회의 땅` 북극이 열린다…美·中·러 新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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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북극권에서 북쪽으로 약 250㎞ 떨어진 그린란드 일룰리사트 서해에서 한 남성이 빙산이 녹은 바닷길을 보트로 건너고 있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해의 해빙 속도가 빨라지면서 북극권 자원 개발과 항로 개척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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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북극을 둘러싼 자원 쟁탈전이 열병처럼 번져가고, 줄어드는 얼음으로 새로운 항로가 열린다. 동토의 도로와 해협을 통한 운송 수단도 증가한다. 북극에 인접한 8개 국가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미국, 캐나다, 러시아,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에는 새로운 대도시가 생겨난다. 북극권은 기회의 땅이 된다."

미국 UCLA 로런스 C 스미스 교수가 예측한 미래 세상의 모습이다. 그가 처음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2010년대 초만 해도 '공상과학 소설'로 치부됐던 내용이지만 지금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고, 북극 자원 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의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안보적인 가치도 조명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열강들의 패권 다툼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오늘날 북극에 대한 관심은 거대한 빙산도 녹일 정도로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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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노르웨이 북부 도시 트롬쇠에서 열린 북극 콘퍼런스 '2018년 북극 프런티어'는 북극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북위 69도에 위치해 '북극의 관문'으로 불리는 트롬쇠에 세계 35여 개국에서 3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북극 프런티어는 '북극 서클(아이슬란드)' '로바니에미 프로세스(핀란드)'와 함께 세계 3대 북극 콘퍼런스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는 '북극의 연결성(Connecting to arctic)'을 주제로 북극과 비북극 국가를 긴밀하게 이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카렌 엘레만 덴마크 노르딕협력부 장관은 "북극은 더 연결될 필요가 있다"면서 "연결은 북극권 경제 발전의 중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유럽 토착민인 사미족도 북극 개방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사미이사회 대표인 아사 라르손 블라인드는 "(북극을 둘러싸고) 국경을 초월한 협력은 북극의 성장과 결속을 가져올 것"이라며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신뢰도가 높아지고 연결성이 향상되고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미국, 러시아, 캐나다 등 북극 인접국과 함께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AC)를 구성해 북극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모색해왔지만 비북극권 국가들에는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석유, 가스, 광물 등 북극 지역 내 천연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했고 북극해의 해빙과 함께 자원을 운송할 수 있는 북극항로도 열리면서 이제는 비북극권 국가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북극에는 전 세계 천연가스의 30%, 석유 13%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막대한 자원에 관심을 갖는 비북극권 국가들과 협력해 대규모 투자를 얻어내면 자연스럽게 인프라스트럭처가 구축되면서 북극권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북극이 열리는 속도에 가장 빠르게 발맞추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 민간연구기관 CNA연구소는 2005~2017년 중국이 북극권 국가에 투자한 금액이 1조4000억달러(약 1521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 중 인프라 투자에는 892억달러(약 97조원)가 투입됐다. 미국 구겐하임파트너스가 2030년까지 북극 지방 전체의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비용으로 추산한 1조달러(약 1087조원)의 약 10분의 1을 이미 중국의 원조로 충당한 것이다. 중국이 지금까지의 투자 규모를 유지한다면 북극에서 가장 큰 투자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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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북극 투자는 단기적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통해 북미·유럽시장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장기적으로는 인프라 구축을 통해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 확보와 관광사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은 2013년 한국, 일본과 함께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하면서 북극 정책 결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중국의 포부는 북극 프런티어가 끝난 지 사흘 만에 공개된 중국의 북극정책 백서(북극백서)에서 가감 없이 드러났다. 중국이 지금까지 공공연히 현대판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북극권을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적은 있지만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북극 전략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극백서에서 중국은 자신이 북극 문제의 이해당사자로서 북극권 국가들과 함께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북극을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넣겠다는 야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최근에는 북극해를 관통하는 해저 데이터 케이블 건설 사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북극 해저 데이터 케이블 사업은 현재 핀란드를 주축으로 러시아, 일본, 노르웨이가 참가해 진행하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2020년 완공되면 유럽~도쿄 간 데이터 전송 속도가 현재보다 3배 이상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데이터 케이블 사업으로 물류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유럽과의 연결성을 향상시켜 일대일로를 안착시키려 하고 있다. 이처럼 직선거리상 3000㎞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중국이 북극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극권 국가들의 숨겨진 계산이 있었다. 그중 가장 적극적으로 중국을 받아들인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가 중국과 손잡은 가장 큰 이유는 북극에서의 영향력 확대다.

러시아는 북극이사회 회원국 8개 중 하나로 북극해에서의 자국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캐나다, 덴마크 등 다른 회원국들이 러시아와 중첩되는 지역에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대립이 커졌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극해 연안국들의 의사 결정을 제한해야만 자국의 북극해 영유권 크기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2008년 러시아는 북극정책 협력 대상국에서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극이사회 주요 회원국을 제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미국, 유럽연합(EU)의 대러 경제제재가 심화되면서 비북극권 국가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려는 러시아의 북극 개방정책은 더욱 강화됐다. 러시아는 2015년 북극 경제 프로젝트 발표에서 한국, 일본 등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들과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우선 파트너'로 선정해 북극이사회 범위 내에서뿐만 아니라 양국 간 협력도 강화하겠다며 특별대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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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북극권 국가들도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특히 자원이 풍부하지만 경제적으로 개발 여건이 부족한 국가들이 중국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원개발로 경제 회복을 시도한 아이슬란드와 모국인 덴마크로부터의 자치권을 확대하려는 그린란드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아이슬란드에 중국인 상주 직원 수백 명을 파견하고 있으며 그린란드의 광산을 인수하는 등 이들의 요청에 다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과 무역, 안보 등 다른 분야에서 갈등을 빚는 미국도 중국의 북극 참여에는 유연한 입장이었다. 2013년 중국을 북극이사회 옵서버로 선정할 당시 찬성했던 유럽 국가들과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캐나다, 러시아가 대립하는 사이에서 미국은 조건부로 이를 용인했다. 대신 미국은 중국이 북극의 지속 가능한 개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처럼 중국에 우호적이기만 한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북극백서 발표로 북극이 공공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빠르게 전환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북극 개발에 보조를 맞춰온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북극해 연안 군비를 강화하면서 북극 장악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옛 소련 시절 배치된 12개의 공군기지를 기반으로 14개 비행장과 16개 항만을 추가로 건설했다. 2015년 북방함대와 제1공군 방공사령부 등을 통합해 북부합동전략사령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러시아는 북극해 항로에 반드시 필요한 쇄빙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로도 유명하다. 미국 해안경비대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41척의 쇄빙선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미국(5척)의 8배에 달한다. 이 중 6척은 원자력 추진 쇄빙선이다. 원자력 추진 쇄빙선을 가진 국가는 러시아가 유일하다.

현재 소수의 해양경비대만 운영하면서 북극의 평화적 이용을 촉구해온 미국도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약 40년 만에 알래스카 유전 개발을 허용할 뜻을 내비치면서 개발과 함께 안보 문제에 대한 논의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자문위원회(ISAB)는 "북극 개발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미국 정부의 충분한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미래의 잠재적인 안보 위기에 맞서기 위해 쇄빙선 건조 등 인프라 투자를 통해 북극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북극권 쟁탈전' 공세 퍼붓는 中·日…존재감 없는 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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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심이 북극에 쏠리면서 한국도 대응책을 마련해 이곳 공략에 나서고 있다. 북극 항로가 개발되면 한국의 물류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한국은 존재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북극 정책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몽골 등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유라시아 진출 교두보를 구축해 극동아시아까지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신(新)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구체적인 북방 경제협력 확대 방안은 '9브릿지'로 명명된 사업이다. 지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측에 제안한 협력 사업으로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 산업단지 등 9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북극항로 개척은 이 사업의 핵심이다. 북극항로를 새로운 물류 루트로 개척해 상업적 이용을 활성화하는 것이 미래 북극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쇄빙선 건조에도 집중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제조하고 있다. 최대 2.1m의 얼음을 가를 수 있으며 영하 52도에서도 안정적으로 장비를 가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제작사인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러시아에서 총 15척의 주문을 받아 현재 4척을 인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건조 현장을 방문해 북극항로 개척에 쇄빙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는 북극항로가 위기를 맞은 한국 조선산업을 되살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극항로가 개척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기후변화와 더불어 야말 공장에서 생산된 LNG 운송이 가능해지면 안정적인 물동량 확보로 이용률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북극항로가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보다 약 7000㎞ 짧아 운송 기간이 열흘 가까이 줄어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손에 잡힐 만한 성과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주력으로 하고 있던 쇄빙선 사업도 최대 수입국인 러시아가 자체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타격이 예상된다. 북극에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김종덕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정책동향연구본부장은 "LNG는 아직 도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형 조선사업을 제외하면 직접적으로 북극에만 초점을 맞춘 사업은 없다"면서 "가스유전 사업은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인 만큼 정책 기관을 만들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 손에 잡히는 금융 재원 투자활동은 없지만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북극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축소된 한국의 입지는 올해 주최된 북극 프런티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일본은 고위급 외교관을 파견해 북극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자세를 보였다. 이데 게이지 일본 북극담당대사는 노르웨이 외교부가 주최한 북극 협약 관련 원탁 토론에 직접 참여해 북극에 대한 관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특히 일본이 북극항로와 LNG 사업 등 새로운 개발 사업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데 대사는 "북극항로 이용 방안과 야말 LNG 사업을 모색하려는 일본 기업이 많다"면서 "위험과 수익성을 평가해 참가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대부분의 세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정책 세션에서 중국의 경제적인 원조와 안보적 위협을 동시에 다루면서 관심과 경계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중국은 아시아 연계 사업에 관한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북극항로의 균형적인 이용법을 모색하는 세션에서는 아시아 대표국으로 직접 참가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북극 프런티어에 외교부와 국내 연구기관에서 소수 인력을 파견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김찬우 전 기후변화대사 겸 북극협력대표를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이 파견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외교부는 한국이 노르웨이, 캐나다 등과 양자 북극협의는 물론 한·미·일 3자 협의를 통해 북극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또 노르웨이 노드국립대 북극물류센터와 부산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의 북극항로 공동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별도 세션이 마련되기도 했으나 올해 한국을 테마로 한 세션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트롬쇠(노르웨이)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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