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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배우 이주화의 유럽스케치(62)] 인연을 만나고 기억한다-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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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짤츠부르크에서 독일로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를 떠나는 우리가족의 다음 목적지는 스위스. 그런데 한 번에 가기엔 거리감이 있어 중간에 독일 뮌헨에서 멈추었다. 짤츠부르크에서 뮌헨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30분. 멀지 않은 거리다. 짤츠부르크에서 출발해 30분이 지나자 어느새 독일이다. 며칠 사이 녹음이 더 짙어졌다. 도로 주변이 온통 푸르다. 오스트리아의 산림에 비해 조금 더 나무의 키가 높게 느껴진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깨끗하다.

한국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다들 힘들어 하는데, 이곳에선 다른 세상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좋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더불어 있었겠지만, 많이 부럽다. 뮌헨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이자르 강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탄다.

강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강물이 깨끗해서 그런지 물속에 몸을 담근 사람도 꽤 있다. 서울의 한강도 이전에는 그냥 물을 떠서 마실 수 있을 만큼 맑았다고 하는데, 다시 그런 날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우리의 아이들이 좋은 자연 환경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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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의 운전
독일 도로를 달려보니, 기계처럼 정확하다고 하는 독일인의 행동양식이 운전습관에서도 나타난다. 도로 사정에 따라 표지판에 제한속도 60km, 80km, 100km, 120km가 나타나는데, 차들이 그 속도를 지킨다. 꽤 정확하게. 도로변에 80km 표지판이 나오면 대부분의 차량이 80km 전후 속도로 간다.

나는 비어있는 1차선으로 달리고 싶은데, 독일인들은 답답할 만큼 제한 속도를 지키는 모습이다. 시내운전을 할 때도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차가 없어 운전하기가 편하다. 잘 정돈된 병정의 나라 같다. 길거리에서도 자유스럽지만 규율을 지킨다. 흥청거리는 이들을 보기 힘들다.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주변 시선을 의식해 질서를 잘 지킨다는 측면이 있다는데, 독일인의 질서 의식의 근원은 무엇일까. 아마 합리성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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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뮌헨 여행의 중심이라고 하는 마리엔 광장으로 향한다. 마침 아버지의 날이라 숙소에서 차를 끌고 마리엔 광장쪽으로 갔다. 광장 뒤쪽 길가에 빈자리가 보여 주차했다. 마리엔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유럽 여행 중에 한 곳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마리엔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막시밀리언 황제가 1638년에 세운 마리아의 탑이 있고, 동쪽에는 구 시청사가 있다. 북쪽에는 뮌헨의 랜드마크인 신 시청사가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거뭇한 외벽의 신 시청사는 보기엔 수 백 년 된 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약 1세기 전인 1909년에 완공됐다. 오후 5시가 되자 광장의 사람들이 신 시청사 앞으로 몰려들었다. 시계탑에서 인형들이 춤추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다. 사람 크기 만한 인형들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다. 말에 올라탄 기사 인형이 결투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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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성 페터 교회도 빠트릴 수 없다. 마리엔 광장 남쪽에 있는 이곳의 탑에 오르면 뮌헨 전경을 볼 수 있다. 좁은 통로의 계단을 밟으며 위로 향한다. 306개 계단을 오르자 꼭대기에 도착한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오른 종탑에 비하면 오르기가 훨씬 수월하다. 스플리트의 종탑 계단은 사방이 훤하게 뚫려 있어 하늘에서 외나무 다리를 타는 것처럼 심장을 오그라들게 했다면, 돌벽으로 사방이 막혀있는 이곳은 식은 죽 먹기다.

탁 트인 눈 앞에 신 시청사와 프라우엔 교회의 쌍둥이 탑이 보인다. 1488년에 완성된 프라우엔 교회는 후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교회로서는 뮌헨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양 쪽 탑의 높이가 100m와 99m로 조금 다르다.

마리엔 광장으로 내려와 뮌헨 최대의 노천 시장인 빅투아리엔 마르크트로 들어가 본다. 과일과 야채가 각각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온갖 향신료를 파는 가게는 독특한 냄새로 발길을 잡는다. 시장 가운데 광장의 비어홀에서는 사람들이 건배를 외치며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나와 남편도 시원한 독일 맥주를 마시기 위해 호프브로이 하우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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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바이에른 왕실의 지정 양조장으로 1589년 빌헬름 5세에 의해 만들어졌고, 1830년부터 일반인도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하루에 판매되는 맥주가 1만 리터나 되고 건물은 3000명 이상 입장할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술집이다.

뮌헨의 첫 날에는 호프브로이 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고 구경만 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고 비어홀 가운데 무대에서 악사들은 신나게 음악을 연주한다. 바이애른의 전통 복장을 한 웨이터들이 서빙한다. 다들 유쾌한 표정이고 보기만 해도 덩달아 신이 난다. 1층 실내의 비어홀이 가장 붐볐는데, 바닥에 맥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지린내가 난다. 3층까지 모두 올라가 본 우리는 냄새가 나지 않는 2층의 실외 테이블에 앉기로 찜하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3층은 단체 손님을 받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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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우리는 한 잔 하기 위해, 차를 숙소에 세워두고 지하철을 타고 마리엔 광장의 호프브로이 하우스로 향했다. 전날 보다 사람이 많다. 2층에서 빈자리가 나길 한참 기다렸는데,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다. 테이블 수가 2층 보다 많은 1층 야외로 내려와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손님이 많아 주문이 밀린 듯 웨이터도 분주하다.

우리는 호프브로이하우스가 자랑하는 라이트 맥주와 다크 맥주를 하나씩 시켰다. 안주로는 우리의 족발과 비슷한 학센과 소시지를 주문했다. 이곳이 매우 유명하고 손님도 많다보니 퀄리티 면에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을 뛰어넘는다. 맥주는 깊고 풍부하다. 학센의 껍질은 바삭하며 쫄깃하다. 안쪽의 부드러운 살과 함께 먹으면 풍미를 더한다. 양념도 과하지 않아 딸아이도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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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만나고 기억한다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분위기에 흠뻑 취한 우리는 마리엔 광장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우리 앞좌석에 아랍계 가족이 앉았는데, 일곱 살 쯤 된 여자아이가 가운데 있다. “엄마, 저 아이도 나처럼 동물카드를 좋아할거 같아”라며 딸아이가 마주 앉아있는 그 꼬마 숙녀에게 아끼던 카드 한 장을 선물한다.

활짝 웃으며 좋아하던 그 아이는 엄마에게 속닥속닥 이야기 하고 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카드를 준다.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걸 보니 뮌헨 동물원 입장권이다. 그렇게 한 장씩, 한 장씩 카드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결국 두 아이는 가지고 있던 카드를 모두 교환하게 됐다. 그 모습에 엄마들은 서로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보낸다. 그렇게 아홉 정거장을 같이 같다.

우연찮게 두 가족이 같은 역에 내리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헤어지면서 조막만한 손으로 “바이”를 스무 번은 한거 같다. 그렇게 아쉬운 작별인사를 많이 나눴는데, 지하철역을 나와서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호텔까지 걸어왔다. 마지막 인사는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하게 됐다.

“엄마~ 저 아이도 날 기억할까?”
“그럼~ 무엇보다 예린이가 기억하고 있잖아. 그리고 나중에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또 만나게 될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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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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