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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배우 이주화의 유럽스케치(57)]무인호텔 악몽의 재현-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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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 가면 비엔나 소시지를 먹어야 하나?’

그라츠에서 비엔나까지는 2시간 거리. 우리는 차 안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가한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를 달린다. 유럽의 고속도로는 선불제와 후불제로 나뉘는데, 오스트리아는 선불제다. 비넷이라고 하는 통행 스티커를 구입해 자동차 앞 유리에 붙여야 한다. 우리는 크로아티아 국경 지역의 마지막 휴게소에서 일주일짜리 오스트리아 비넷을 구입해, 슬로베니아 비넷 옆에 나란히 붙였다.

오스트리아 고속도로는 선불제라 그런지 톨 게이트가 없다. 우리는 숙소에 먼저 짐을 내려놓고 시내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시내를 관통해 도착한 비엔나 가든 레지던스는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레지던스는 아파트형 숙소라 조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있어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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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리셉션이 없다. 당연히 레지던스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크로아티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때는 열려있는 방에 무단으로 침입했고, 직원은 밤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비엔나는 더 난관이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도 없다. 현관 옆에 있는 벨을 하나씩 다 눌러봤지만 반응이 없다.

메일을 열어 숙소 바우쳐를 확인해 보니,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작은 글씨로. ‘이 숙박시설에는 프런트 데스크가 없습니다. 예약 확인에 있는 연락처로 숙박시설에 미리 연락하여 체크인 안내를 받으시길 바랍니다’라고. 이럴수가. 남편 휴대폰으로 안내된 번호를 눌러보지만 연결이 안된다. 내 휴대폰의 심 카드는 영국통신사의 데이터 전용 유심이라 쓸모가 없고, 남편은 스페인에서 프랑스 통신사의 유심을 끼워 넣었는데, 오스트리아에서는 신호가 가지 않는다. 국가 번호 지정이 잘못되었는지 음성 통화분을 다 소모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했다. 산책을 하던 한 젊은 여성은 “당연히 도와주겠다”라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바우처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해주었다. 오랜 신호음이 끝에 받는 사람이 없다. 그녀는 레지던스를 빙 돌아보며 또 다른 연락처는 없는지, 관계자는 없는지도 살펴보았다. “미안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거 같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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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하나’ 손발이 묶여 있는 것처럼 고민에 빠져 있는데, 레지던스 안에서 부부가 아이와 함께 걸어나오는게 보인다. 다짜고짜 다가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프랑스에서 온 부부였는데, 남편인 조르쥬가 입실할 때 연락을 취한 레지던스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직원에게 우리 가족의 상황을 일단 전달한 뒤 남편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유선 상으로 숙소 예약자인 남편을 확인한 그 직원은 다시 조르쥬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조르쥬가 미소를 머금으며 레지던스 열쇠를 가지러 가자고 한다. 열쇠는 레지던스 차고 앞에 있는 작은 박스에 있었는데, 우리 가족을 대신해 직원으로 부터 패스워드를 받은 조르쥬가 4자리 번호를 누르자 210호라고 쓰여 있는 열쇠가 툭 하고 떨어져 나온다. 조르쥬와 그의 부인 리나는 그 열쇠로 차고 문을 여는 법, 그리고 201호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그들은 우리가 방문까지 여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던 안심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다시 또 보게 되면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했다. 그들은 “저녁에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만약 일찍 돌아오면 와인을 함께 마시자”고 하며 “비엔나는 서울처럼 안전하다. 마음껏 즐기라”는 말을 남기고 자동차에 올라탔다. 한국에도 온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은 해양 생물학자로, 주로 카리브 해 쪽에서 연구 활동을 한다고 했다.

숙소는 여행의 시작이며 베이스캠프다. 숙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게 올 스톱이다. 비엔나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숙소 문제로 애를 먹었는데, 조르쥬 부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도와달라”는 우리의 요청에 한결같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산다. 또한 도움을 주면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은 그 점을 계속 절실하게 느끼며 여행을 하고 있다. 그동안 도와준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런 마음을 간직하며 여행을 한다. 나또한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설사 모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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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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