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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배우 이주화의 유럽스케치(53)]호텔에 무단으로 침입하다-자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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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크로아티아의 자다르에 있는 호텔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프런트를 거치지 않고 방에 진입해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밥도 해먹었다. 어쩔 수 없었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자다르는 절경을 자랑하는 아드리안해 관광의 시작점이다. 슬로베니아의 피란을 떠난 우리는 숙박앱을 통해 예약한 자다르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무려 별 4개짜리 숙소인데, 자그마치 50% 할인을 적용받았다. 방 두 개에 욕실도 두 개이며 조리를 할 수 있는 아파트형 숙소로 후기를 읽어보니 신축 건물이라 무척 깨끗하고 수영장 두 개에 해변에서도 가깝다는 내용, 즉 ‘좋다’는 추천이 주를 이뤘다.

바다와 요트가 보이는 숙소 앞에 차를 대고 체크인을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직원이 없다. 컴퓨터 화면만 깜박거린다. 잠시 어디 갔나? 15분 정도 기다려 본다. 오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구입한 우유와 고기가 상하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데...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직원을 찾으러 나섰다. 1층부터 3층까지 걸어올라갔는데, 인기척이 없다. 혹시나 해서 방마다 문을 열어 봤는데, 꼭대기 층의 방문이 열린다. 들어가 보니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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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층으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 직원이 나타나길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자다르 시내에서 벗어난 곳이라 지나가는 사람조차 한 명 없다. 민박의 경우 호스트가 열쇠를 지정한 곳에 두고 가기도 하지만, 호텔에서 이러한 일이 생길 줄 예상도 못했다. 무인 호텔인가? 별 생각이 다 든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쉴 수 있는 방을 내줄 직원인데 감감 무소식이다. 점점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무작정 기다릴 순 없다. 이 시간에 다른 곳을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우리는 문이 열렸던 3층 방으로 일단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차에 있는 짐도 모두 옮겼다. 3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열이 난다. 샤워를 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식사까지 마쳤다. 그러나 불안하다. 허락 없이 무단으로 들어온거 같아 걱정이 된다. 남편에게 괜찮은지 물어보니, “잘 있다가 가면 된다”고 한다.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다.

남편은 자다르의 숙소를 우리 집인 것처럼 사용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두꺼비 집을 찾아 들여다본다. 그래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현관 옆의 벽에 있는 구멍에 현관 열쇠를 넣어 오른쪽으로 돌린다. 그랬더니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 와이파이는 TV옆의 셋톱박스를 만지더니 금세 연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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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사 후에 숙소 앞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붉게 물든 바다가 아름답다. 어둠이 황혼을 밀어낼 즈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 차 옆에 못 보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사람도 보인다. 그녀는 우리에게 다가와 이름을 확인한다. “맞다”고 하니 웃으며 반긴다. 그녀에게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문이 열린 6B로 들어갔다”고 하니 “오늘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방”이라며 “잘했다”고 한다. “그래, 우리가 잘 대처해서 마련이지 자칫 차에서 계속 기다릴 뻔 했다”고 항의하자 그녀는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한다. 딸아이에겐 초콜렛을 준다.

그녀에게 자리를 비운 이유를 물어보니 “요즘은 비수기이고 언제 올지 몰랐다. 혼자 이곳에서 일하는데, 남편이 급한 일이 있다고 불러 잠깐 나갔다 왔다”고 한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 미안한 표정으로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손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투숙객이 언제 올지 모르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게 정상이 아닌가. 아니면 메모라도 남겨둬야 하는게 맞다.

나는 “당신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좀 놀라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라고 했다. 차에서 기다리며 마음을 조리고, 또 숙소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허비한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내일 오전에도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그녀에게 “열쇠는 테이블 위에 반납하고 가겠다”며 돌아섰다.

*자다르-이탈리아를 떠나 슬로베니아를 지나 계속 동쪽으로 향한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자다르에 짐을 풀었다. 아드리안 해안을 끼고 있는 크로아티아는 자연 풍경이 아름다운 나라인데, TV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시리즈에 소개되며 많이 알려지게 됐다. 자다르는 두브르부니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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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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