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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연휴 짧아 '친정 포기' 속출 "차라리 명절 없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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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먼저' 공식에 며느리들 '시월드 스트레스' 가중…"누구를 위한 명절이냐"]

머니투데이

삽화=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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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직장인 박모씨(여·33)는 짧은 연휴 탓에 이번 설 명절 친정 가는걸 포기했다. 연휴 4일 중 이틀을 시댁에서 보내고 하루는 회사에 나가야 해서다. 서울에서 친정인 경남 통영까지 가려면 최소 이틀은 잡아야 하지만 다녀올 시간이 없다.

박씨는 "쉴 시간도 없고 친정도 가지 못하는 게 너무 싫다"며 "연휴가 짧으면 시댁이나 남편이 친정을 못 가는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짜증 난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명절은 가부장제를 가장 압축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음식 장만 등 육체적 고됨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호소한다.

며느리들은 비교적 짧은 연휴 때문에 고통을 호소한다. 연휴가 짧아도 시댁에서 보내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대신 쉬는 시간이나 친정에 갈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어서다.

결혼 2년 차 김모씨(30)는 설 명절을 앞두고 시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남편이 설 당일 회사에 출근해서 이번 설에는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결혼하고 명절에 단 한 번도 친정 식구들을 만나지 못해 이번에 다녀온다고 했더니 시어머니가 '남편이 못 오면 너랑 애라도 와야지 무슨 소리냐'고 노발대발하셨다"며 "'우리 집에 시집온 거면 무조건 시댁이 먼저', '요즘 애들 시댁 무시하는 꼴 나는 못 본다'는 말에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 가부장제는 며느리를 그저 며느리일 뿐 누구의 자식도 아니고 가족도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요즘은 자기 주장을 당당히 펼치는 며느리들도 있다지만 여전히 대다수 며느리들은 속으로 삭히는 경우가 많다. 기왕이면 시댁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다가 어느새 자기 자신도 모르게 '시댁 우선' 원칙을 당연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두 아이의 엄마 이모씨(36)가 그렇다. 이씨는 올해도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일찌감치 차 막히는 시간을 피해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을 찾았다.

이씨는 "처음에는 시댁에 잘 보이려고 했던 일이 이제는 일종의 체념이 돼 나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것 같다"며 "2년 전부터 시댁에서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도 모시는데 손주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 하라는 무언의 압박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주부 김모씨(31)도 시댁에 불만 한마디도 말 못하는 처지다. 김씨는 "지난해 추석에는 명절이 길어서 시아버지가 '시누이와 고모들도 보고 가라'고 하는 통에 친정에서는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다"며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니 너무 좋다'는 시댁 어르신들 말에 혼자 쓸쓸히 계실 부모님들 생각하니 서러움이 복받쳤다"고 말했다. 이어 "연휴가 길든 짧든 시댁에서 요구하는 건 변함이 없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전업주부들의 명절 기대감은 낮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설 명절을 맞아 성인 남녀 31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업주부의 64.2%가 '설 연휴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일자리가 없는 취업준비생의 반응(67.2%)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예 전업주부 4명 중 1명은 '설 연휴가 없는 게 낫다'고까지 대답했다.

전문가들은 며느리, 사위처럼 새롭고 낯선 가족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소통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방식을 쌍방향으로 바꾸고, 자녀세대는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부가 시댁, 처가에서 본인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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