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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의 눈물]②설이 서러운 시장상인…"돼지고기 한근 판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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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소비위축에 매출 반토막…"제수용품도 안팔려"

[편집자주] 상시근로자 5인 미만(광업·제조업·건설업·운수업은 10인) 사업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서민 경제의 근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전국 354만개 사업장 중 86.4%인 306만 곳이 소상공인 사업장으로 조사됐다. 이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창업한 지 5년을 견디지 못 하고 폐업한 기업 중 소상공인 비중은 98% 이상이었다. "경영난을 버티기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몰린 전통시장과 가구판매 거리에선 설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뉴스1>은 이달 민족대명절 설을 맞았지만 경영 어려움을 호소하는 소상공인의 현실을 취재했다.

뉴스1

13일 오후 종로구 T시장 폐업 매장. 설을 앞두고 있지만 시장에는 손님이 없어 썰렁했다. 2017/02/13© News1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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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설 특수가 웬 말입니까. 오늘 아침에 출근해 하루 8시간 동안 돼지고기 한 근을 판 게 전부예요"

서울 통인동 T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모(50)씨의 하소연이다. 날이 선 회색 칼로 돼지고기 비계를 자르던 그는 '설 특수'를 묻는 기자에게 "주변 좀 보라"고 면박을 줬다. 손님이 있는 매장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시장 주요 고객층인 50~60대 여성들은 흥정조차 하지 않은 채 종종걸음으로 시장을 빠져나갔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3일 오후 3시께, T시장은 한파에 얼어붙은 것처럼 활기가 없었다.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시장 현수막이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검은색 귀마개를 한 백발의 여성 상인이 매장 앞에 웅크린 채 대추껍질을 깠다. 철문을 아예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 매장도 눈에 띄었다.

상인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91세 노모와 건어물 매장을 하는 홍모(68)씨는 "이게 국민소득 2만 달러 나라에 사는 자영업자의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루 매출을 묻자 그는 "부끄러워 말 못 하겠다"고 하고선 자신보다 얼굴 주름이 더 깊게 팬 노모를 바라봤다.

이들 모자는 50년 동안 시장통에서 일했다. 지금보다 살기 더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설 대목이면 시장 안이 바글바글했다고 홍씨는 회상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해외여행을 가지 않느냐"며 "황태·북어 같은 제사상 먹거리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시장의 경영난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상인들은 하루 매출이 작년보다 30~50% 감소했다고 털어놨다.

설 특수 기대는 접은 지 오래였다. 오히려 설은 '물가상승의 원인'이라 상인들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청탁금지법 완화로 소고기 수요가 늘었다지만 가격이 뛰자 손님들은 지갑을 닫아버렸다. T시장 정육점들은 1+등급 한우 등심 한 근을 6만~7만원에 팔았다. 전달보다 10~30% 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한다. 언론에선 물가안정 전망이 쏟아지지만 소비자들은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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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인동 T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송모(85·여)씨. 송씨는 "영하의 날엔 손님이 끊겨 과일 한 개도 팔지 못 한다"고 말했다. 2018/02/13© News1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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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달 설을 맞아 전통시장 판매 촉진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월 한 달 간 온누리상품권 개인구매 할인 한도를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온누리상품권 구매 할인율도 5%에서 10%로 확대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같은 정책 효과를 느끼기 어려웠다.

곱게 빚은 떡을 매장 앞에 내놓고 마른 기침을 하던 김모(72·여)씨는 "물건을 사겠다는 손님 자체가 거의 없는데 정부가 온누리상품권을 아무리 뿌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만 불경기가 너무 심해 어떤 대책도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수산물 매장에서 냉동 오징어 등 6만원어치를 산 50대 A씨(여)는 "수산물의 경우 전통시장이 마트나 백화점보다 싱싱하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시장 단골이 아닌 이상 이 점을 잘 모른다"며 "일반 소비자는 시장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한평생 상인으로 살아온 자부심도 무너지고 있었다. 과일매장을 하는 송모(85·여)씨는 "자식들에게 시장일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충청북도 제천 출신인 송씨는 스무살에 선박을 몰래 타고 강을 건너 서울에 이르렀다. 3년 간 식모살이를 하다가 주인집이 도산해 거리로 내몰리자, 시장에서 과일을 팔며 자식 네 명을 키웠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 했던 그는 자식 둘을 대학교에 보낸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 교육 받은 아들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고 60대 막내 아들은 음식점에서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꼬박꼬박 급여라도 받지. 괜히 여기 매장 물려줬다가 빚더미에 오를 일 있어. 그렇지 않아도 막내아들을 대학에 보내주지 못 해 한이 됐는데…" 한평생 멋 한 번 제대로 부리지 못 했다는 소상공인 송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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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이틀 앞둔 13일 오후 서울 통인동 T시장. 2018/02/13© News1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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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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