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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뒤끝뉴스] 돈 주인과 계좌 명의 다르면 불법일까 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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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등 선의의 통장 고려

합의 차명도 실명거래 해당

재벌 회장에 과징금 어려운 이유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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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이름을 빌려 만든 계좌, 즉 돈 주인과 계좌의 명의가 다른 차명계좌는 불법일까 합법일까.

많은 이들이 불법이라 여기지만 대부분은 합법이다. 금융실명법 3조엔 ‘금융회사는 거래자의 실지명의(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이름)로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반드시 거래자 본인 실명으로 계좌를 터야 한다고 나와 있진 않다. 법만 놓고 보면 다른 사람 신분증을 빌려 계좌를 개설하는 ‘합의 차명’(차명계좌)인 경우에도 실명 거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금융실명제는 돈 주인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계좌를 트는 사람이 본인 주민등록증으로 계좌를 만들었다면 실명 확인을 거쳤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금융기관이 현실적으로 거래자가 실제로 돈 주인인지 가릴 방법이 없고, 동창회 통장이나 가족 통장 등 선의의 차명계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선의의 차명계좌를 인정하지 않으면 모두 불법으로 간주해야 하는 현실이 고려된 셈이다. 그 동안 금융당국이 2008년 특검에서 드러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물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국민 상식과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와 선의의 목적으로 만든 동창회 계좌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법제처는 최근 이 같은 모순을 한 번에 정리했다. 수사기관에 의해 돈 주인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엔 차명계좌를 본인 실명으로 전환하고 계좌잔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실명제가 차명계좌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긴 하지만 수사기관에 의해 차명계좌를 튼 사실이 밝혀질 정도로 의도 자체가 불순한 차명계좌에 대해선 불법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다. 2008년 특검 발표로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드러난 지 10년 만에 과징금 부과 조치가 내려지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다른 대기업 회장이 갖고 있는 차명계좌는 어떨까. 이 역시 상식적으로 보면 과징금을 물리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실명제 시행(93년 8월12일) 이후 만들어진 차명계좌엔 법적 근거가 없어 과징금 자체를 물리는 게 불가능하다.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93년 이전 만들어진 가명(주민등록번호와 계좌주인 이름이 다른 경우)계좌 등을 차명으로 전환한 경우에도 이 회장처럼 수사기관에 의해 실제 돈 주인이 다르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돼야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으로 간주되지 않아 과징금은 물론 차등과세(이자소득의 90% 부과)도 할 수 없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검찰이 혐의도 없이 대기업 총수를 상대로 차명계좌 조사에 나설 순 없을 것”이라며 “제도 보완 차원에서 실명제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한국일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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