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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친척ㆍ교수님 회사로... 대졸자 4명 중 1명 ‘인맥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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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 분석

예체능 계열이 인맥 취업 최다

“청년 실업률 두 자릿수에 육박

정부, 불공정 채용 대책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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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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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경(23ㆍ가명)씨는 올해 2월 졸업 후 서울에 본사가 있는 A건설회사의 회계 담당으로 일하게 됐다. 3년제 대학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했고, 건설이나 회계와는 딱히 인연도 관심도 없던 윤씨가 별 어려움 없이 취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A사가 그의 외삼촌이 경영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윤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했는데 자꾸 떨어져 고민이 많았는데 부모님이 부기(전산회계) 자격증을 따면 외삼촌 회사에 취직시켜주겠다고 했다”면서 “회계 관련 자격증 중 가장 쉽다는 전산회계운용사2급을 땄더니 바로 채용이 결정됐다”고 전했다. 아무리 대표의 외조카라도 남들 눈이 신경 쓰이니 최소한 자격증이라도 갖고 있으라 했다는 것이다. 실제 A사에서 회계업무를 맡는 직원 중 회계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은 윤씨 뿐이다.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얻은 4명 중의 1명이 가족이나 친척, 교수 등 주변의 주선으로 이른바 ‘인맥 취업’을 한 것으로 14일 드러났다. ‘빽’도 능력이라는 말처럼 인맥은 여전히 취업시장에서 필요한 자격요건(스펙)으로 통하고 있었다. 능력있는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 모두 문제가 될 순 없지만, 가뜩이나 취업문이 비좁은 상황에서 공정한 채용을 해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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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용정보원의 ‘2016년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인맥을 통한 취업’ 사례가 전체 중 24.2%를 차지했다. 이 조사는 전문대 및 대학을 졸업해 2016년 9월 기준으로 취업상태에 있던 38만94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일자리를 얻는데 가장 많이 이용된 경로는 공개ㆍ수시 채용시험 합격(13만1,374명ㆍ34.8%), 인터넷 구직 사이트(8만2,468명ㆍ21.9%), 가족ㆍ친척 및 지인의 소개나 추천(5만751명ㆍ13.5%), 학교(학원) 선생님의 소개나 추천(4만297명ㆍ10.7%) 등의 순이었다. 인맥을 통한 취업이 24.2%에 달한다.

전공별로는 예체능 계열(30.8%)에서 인맥을 활용한 취업이 가장 빈번했다. 서울 한 여대의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이민정(27)씨는 “졸업을 앞두고 교수님이 본인이 창업했다가 지금은 지인에게 넘긴 디자인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며 “근무조건도 다른 회사와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고, 굳이 복잡한 채용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맥 취업이 가장 낮은 전공은 교육(15.7%)이었다. 학교 유형별로는 2~3년제 대학 졸업자가 31.7%로 4년제 졸업자(19.8%)보다 많았다. 또 가족사업, 즉 부모님이 경영하는 회사에 들어가는 비율은 남성(5.4%)이 여성(3.6%)보다 높았다.

청년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육박할 정도로 취업 한파를 넘어 ‘취업 빙하기’에 시달리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이 같은 인맥 취업은 형펑성과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비록 사적인 영역이라 법적으로 규제할 근거는 없지만, 공공기관이나 금융회사 등의 채용비리에 더해 민간기업의 인맥을 통한 불공정 채용이 늘어날 경우 사회적인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채용은 법적인 제재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불공정한 채용 또한 기업의 ‘갑질’이기 때문에 정부도 사안의 중대함을 인식해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