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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파편화된 진실’로는 역부족…대법은 ‘완전 입증’만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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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아내 보험 살인 의혹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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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삼거리 휴게소 부근에서 스타렉스 승합차가 갓길에 서 있던 8t 화물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운전자인 남편은 안전벨트를 맨 상태여서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조수석에 있던 캄보디아 출신 아내는 즉사했는데, 남편과 달리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임신 7개월이었고 배 속 아기도 같이 죽었다.

처음엔 단순 교통사고로 보였지만 점차 수상한 정황이 드러났다. 남편은 아내 명의로 26건의 보험에 가입해 있었고, 보험금은 95억원에 달했다.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내를 살해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상황이었다. 수사 끝에 검찰은 결국 남편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아내를 살해하려고 앞에 정차해 있던 화물차를 일부러 들이받았다는 의혹이었다. 반면 남편은 졸음운전을 하다가 추돌사고를 낸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사고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스타렉스는 앞 오른쪽 부위(조수석 부위)로 고속도로 갓길 비상정차지대에 있던 8t 화물차의 뒤 왼쪽을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가 그 충격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직접적인 증거는 사고 직전에 찍힌 CCTV 영상뿐. 그런데 여기에 의혹이 있었다.

첫째, 스타렉스는 사고 지점 약 400m 앞에서 돌연 상향등을 켰다. 상향등이 우연히 켜지기는 어려우니, 졸음운전을 했다는 그의 말과 배치된다. 게다가 스타렉스는 상향등을 켠 후에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주행했고, 속도도 빨라졌다. 전방에 화물차가 놓인 것을 보고 기회를 포착, 정확히 확인하려고 상향등을 켠 후 달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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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교통전문기관에서 사고영상을 분석해보니, 스타렉스는 충돌직전 차를 오른쪽으로 조금 틀어 갓길에 진입한 후에 다시 차를 왼쪽으로 조금 틀어 곧장 달리다가 다시 조금 오른쪽으로 틀어 트럭을 들이받은 것으로 판독됐다. 이런 섬세한 조향은 졸음운전을 했다는 말과는 맞지 않는다.

셋째, 스타렉스 차량은 수동변속기였는데, 6단에서 4단으로 변속된 채 발견됐다. 역시 졸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하여, 사고 지점까지 계속 커브 구간이었고, 특히 마지막 두 개의 커브 구간은 사고 지점 직전이었다. 적어도 이 커브 구간을 돌 때까지는 졸지 않았을 것인데, 바로 사고 지점에서 졸았다는 말도 설득력이 약했다.

사고 외적으로 의심스러운 정황도 많았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아내와 혼인 직후부터 가입한 거액의 생명보험이다. 월 보험료가 400만원을 넘었다. 남편은 충남 금산군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수입에 비해 보험료가 너무나 과도한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남편은 보험청약서에 월수입을 500만원으로 썼다가, 경찰에서는 700만원이라 했다가, 검찰에서는 1000만원이라고, 법정에서는 1500만원이라고 다르게 주장했다. 자료로 드러난 매출액은 최대 월 1000만원 정도였는데 비용을 제외하면 수입은 훨씬 못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월 400만원의 보험료는 비상식적이다.

사고 당시 아내는 잠들어 있었는데, 혈액에서 디펜히드라민이라는 수면유도제가 검출됐다. 감기약에 들어있는 성분이다. 혹시 남편이 이걸 음료수 등에 타서 아내에게 먹여 재운 게 아닐까. 아내가 스스로 약을 마셨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임신 7개월인 아내가 감기약을 먹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평소 부부는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고, 사고 직전 CCTV 영상에도 둘 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은 걸로 확인됐다. 그런데 사고 당시 아내는 안전벨트를 안 했고, 남편은 공교롭게도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다. 사고 후 남편은 휴대전화를 교체하였는데, 구휴대전화로 살인에 필요한 검색을 하였고, 그 휴대전화를 바꾸어 이를 은폐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검찰은 추정했다. 남편은 사고 후 병원에서 웃으며 V자를 만들어 셀카를 찍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내를 잃은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신의학 교수는 남편의 말과 내면 정서가 불일치한다는 감정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런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두고 재판결과는 좀 오락가락했다. 직접 증거가 없었기 때문인데, 남편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랬다가 2심에서 바로 결론이 뒤집어졌다. 재판부는 위의 사정들을 근거로 유죄로 인정하고 남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결론은 대법원에서 또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동기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고의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일으켜 임신 7개월인 아내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는 범행을 감행했다고 보려면 그 범행동기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려 매달 보험료만 400여만 원에 이를 정도로 여러 건의 보험에 들었다지만,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남편의 월 수익이 1500만~1650만원에 이를 정도여서 경제적으로 궁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졸음운전으로는 이 사건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좀 더 과학적이고 정밀한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그러지 않는 한 고의에 의한 교통사고라고 쉽게 속단할 수 없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사건이고, 대법원의 판결이 지나치게 엄격한 거 아니냐고 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여기서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수년 전에 있었던 유사한 케이스인데, 역시 남편이 교통사고를 위장해 아내를 살해했다는 의혹으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2008년, 당시 아내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과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대화를 하려던 것이었을까, 그날 남편은 아내를 그랜저 승용차에 태우고 양주시 장흥면 편도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밤 9시쯤 그곳에 대전차 방호벽이 설치된 터널의 입구를 그랜저 우측 부분으로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아내는 죽고 남편은 경미한 상처만 입고 끝났다.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고는, 놀랍게도 사고가 두 번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랜저는 터널 ‘안쪽’을 들이받는 1차 사고를 냈는데, 남편은 얼마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터널 ‘입구’를 들이받아 2차 사고를 일으켰고, 그때 아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1차 사고는 통상적인 과실로 일어난 교통사고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사고가 일어난 직후 남편은 머리를 굴린다. “이 사고를 잘 이용하면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내를 죽일 수 있겠다.” 남편은 차를 다시 되돌려 현장에 왔고, 이번에는 고의로 터널 벽을 들이받아 아내를 살해했다. 이것이 수사기관의 견해였다. 검찰은 남편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1, 2심에서는 유죄로 인정하고 남편에게 각각 15년, 9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이를 파기했다. 남편에게 살인죄가 인정되려면 우선 사고가 두 번 있었음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기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거였다. 1, 2심 유죄의 증거, 즉 두 번의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본 근거는 ‘보강용 강판조각’이었다. 사고 차량은 터널 바깥의 입구 쪽에 충돌했는데, 사고 차량의 보강용 강판이 어쩐 일인지 터널 약 2m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 철제구조물에 낀 채 발견됐다. 또 차체 옆 긁힌 자국도 그 철제구조물에 칠해진 페인트와 동일했다. 이는 사고 차량이 터널 안에서 차체 측면으로 벽(철제구조물)을 들이받은 1차 사고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터널 입구를 들이받아 멈춘 사고 차량이 다시 터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은, 터널 안쪽에서 1차 사고를 낸 차량이 현장에 되돌아와 이번에는 터널 입구를 들이받은 2차 사고를 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후자는 고의적 사고, 즉 살인이다.

이 결론에 대법원은 회의적이었다. 터널 안쪽 벽에 사고 차량의 강판조각이 끼어 있는 건 맞다. 그런데 낀 시기가 문제다. 검찰 주장은 1차 사고가 있어 그때 차량의 강판조각이 터널 안쪽 철제구조물에 끼었다는 이야긴데, 그게 분명치 않다. 사고 직후에 촬영된 사진으로는 그곳에 강판조각이 분명하게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고 당시부터 강판조각이 터널 안 철제구조물에 끼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1차 사고가 별도로 있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 이런 논리였다. 하지만, 이 판단은 의문이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터널 안에 강판조각이 낀 것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면, 이 강판조각은 사고 직후 (경찰이 출동해서 터널 내부를 촬영하기 전까지 사이에) 차량에서 빼서 터널 안 벽에 끼워 넣은 거란 말인가? 도대체 누가? 어느 틈에? 어떻게? 왜? 이 가능성은 거의 길 가다가 떨어진 간판에 맞는 사람을 보고 놀라 심장마비로 넘어진 사람 뒤에 깔려 죽을 확률 정도 아닐까. 아무튼 이 사건은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다시 ‘캄보디아 아내 보험 살인 의혹 사건’으로 돌아와 보면, 대법원은 결국 이것이 교통사고인지 고의 사고인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더 신중하게 재판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면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대법원은 이 건과 흡사한 예전 양주시 교통사고 사건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죄로 간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 거의 동일한 사안에서 예전에는 무죄라고 해놓고 이번엔 유죄라고 하려니 논리적 일관성도 없고, 꺼려졌을 수 있다. 혹시 첫 사건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은 아닐까.

파기환송 사유가 선뜻 납득이 가지 않기에 더 그렇다. 특히 범행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논리는 의문이다. 피의자가 돈이 궁하지 않았으니 동기가 부족하다고 했지만,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발장형’ 범죄만 있는 게 아니다. 더 많은 돈을 탐한 이욕범도 있다. 오히려 살인에는 이쪽 동기가 더 흔하다. 이 사건에서는 남편이 가입한 보험내역만 보더라도 이욕 동기를 품고서 미리 준비했다고 의심할 여지가 있다. 가난하지 않았으니 동기가 없다는 판단은 이 사건이 오직 경제적 곤궁을 벗어나기 위한 ‘장발장형’ 범죄라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런 걸 미리 단정하는 건 논점 선취의 오류다. ‘이례적인 보험금을 들었으니 이욕범의 의심이 든다’는 게 자연스러운 논리다.

또 다른 사유, 즉 졸음운전으로는 이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점에 대한 과학적 입증을 하라는 부분은 난제다. 범행 동기는 관점을 달리 한다면 인정될 여지도 있다. 반면 이쪽은 대법원 판결 취지로 보아 100%에 가까운 완전 입증을 요구하는 듯한데,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당위적으로는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형사법의 지상명령 때문이다. 정책적으로는, 이렇게 함으로써 수사의 수준을 높이고 과학수사 발전의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후자 즉 정책적인 측면만 본다면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는 반대로 대단히 위험한 ‘범죄촉진책’이 돼버릴 수 있다. ‘차에 태우고 가다가 교통사고인 척 들이받아 죽이면 대략 무죄로군’ 잠재적 범인에게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미 그런 일이 우리 눈앞에 벌어진 걸 수도 있다. 법원은 양주시 교통사고 사건을 의식해서 이번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면, 거꾸로 ‘만약 남편이 범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양주시 교통사고의 무죄 판결에서 이번 범행을 실행할 힌트와 용기를 얻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둘 다 공상이다.

무죄로 해버리면 판사는 마음이 편하다. 억울한 죄인을 만들 가능성은 제로가 되니까. 하지만 그걸로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피해자가 사적으로 보복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놓고서, 정작 처벌을 떠맡은 국가가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보인다면? 법관은 당위 말고 다른 건 고려할 필요 없어, 라고 외면하면 그만일까. 살의를 품은 예비 범인을 안심시키는 판결이 되지는 않을지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완전 입증을 요구할수록 오판 가능성은 낮아진다. 판사의 마음은 이쪽이 편하겠지만 그만큼 완전 범죄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판사는 그 책임은 안 진다.

유죄로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한다. ‘바늘 끝 같은 의심’도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극한의 입증을 요구할 때 발생하는 재판 불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절충으로 확립된 형법상 원칙이다. 위 사건들에 존재했던 가능성은 합리적 의심일까, 아니면 신경증적 의심일까.

▶필자 도진기

경향신문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10여권의 책을 썼다. 2017년 2월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작품으로는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순서의 문제> <모래 바람> 등이 있고,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도진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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