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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명랑한 뒷맛]이곳은 누구의 고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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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좀 다녀올게. 누가 이 말을 하면 이상하게 뭉클해진다. 고향에 가는구나. 태어나 자란 곳,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 곳. 꼭 명절이어서가 아니라 고향으로 향하는 심사가 어쩐지 가늠이 되기도 하고, 그곳에 다녀온 후의 조금 안정된 상태의 그를 기대하게도 된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부러운 마음도 생겨난다. 그런 곳이 있다니. 명확하게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니.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 물어오면 우선 불편하다. 어쩐지 출신을 파악하고 편을 만드는 꼰대 같은 느낌이 든달까? 그 다음에 오는 느낌은 난감함이다. 글쎄 그곳을 어디라고 해야 할지. 갑자기 소심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태어난 곳이 서울이니 서울이라 할까. 초·중·고 시절을 보냈고 여전히 부모님이 사는 곳이 인천이니 인천이라 할까. 아니면 아버지 고향 무장이나 어머니 고향 순천에 슬그머니 묻어가볼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는 질문에, 과연 그 친구도 그렇게 생각할까 가늠하며 저어하는 사람처럼.

예전에 아시아 작가들이 모여 문학적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떤 작가는 오래전 떠나온 고향이 마음속에서 항상 2㎞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 멀어질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곳. 그래서 자꾸 쓸 수밖에 없는 곳. 또 다른 작가는 떠돌아다니다 멈추는 바로 그 자리가 고향이라고도 했다.

이에 도서관이나 인터넷 공간을 자신의 문학적 고향인지도 모른다는 젊은 작가도 있었고, 심지어는 편의점이 자기 문학의 자양분이자 고향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서울(Seoul)이 고향인 것이 어쩐지 시시해 보인다는 말에, 한 일본 작가가 ‘소울(soul)’이 고향이니 얼마나 근사하냐고 응답했다. 나는 고향을 명확히 댈 수 있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그랬다. 미나리꽝이나 갈대밭이나 과수원 같은 게 있으면 좋겠고, 적산가옥이나 소금창고나 향교나 토성 같은 게 있어도 좋겠고. 아니면 물 건너 섬마을이나 산골마을이나 천변마을 같은 곳이면 더욱 좋고.

내 고향은 어디라고 말할까? 부모님이 각자의 고향을 떠나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무악재였다. 어머니는 서울여상에 입학한 동생 때문에, 아버지는 얹혀 살 수 있는 유일한 친척이 그곳에 살아서 선택한 동네가 무악재.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남녀가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다가 정분이 나는 건 어쩌면 뻔하고도 남는 일. 그리하여 그 둘이 부부가 되어 보금자리를 튼 곳은 홍제동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로부터 대략 십년간 홍제동, 불광동, 연신내, 진관외동, 삼송동으로 북서진을 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부평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나는 그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집을 나와 처음 독립한 곳이 이촌동이었고, 전세계약이 끝나는 2년마다 이촌동에서 이촌동으로 부암동으로 평창동으로 동네를 옮겨다니다가 현재 불광동에 정착을 했고, 10년 동안 그곳에 산다.

불광동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누군가는 밀려밀려 그곳 산 밑까지 갔느냐고도 했지만, 정작 나는 고향에 돌아온 기분도 들었다. 아마도 그곳이 내 기억 속 최초의 동네이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집이 불광동 어느 즈음의 문간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한동안 저녁마다 불광동 산책을 다녔다. 해가 지고 난 후 나가는 불광동 동네산책은 제법 흥미로웠다.

야산을 넘어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연신내 시장까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는 게 기본 코스다. 허름하고 작은 단층집들이 닥지닥지 붙어서 끊어졌다 이어지고 무수한 막다른 길을 만들어내는 그 골목길의 이름은 번영1길 번영2길, 행복1길 행복2길.

그 좁고 구불구불한 번영길에는 오래된 미장원이 다섯 개나 있다. 골목까지 침투한 대기업 마트의 위협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자그마한 전방도 물론 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밤 가로등 아래는 손부채 하나씩 들고나온 노인들 차지. 요즘 같은 세상에 고함을 지르며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땀을 찔찔 흘리며 뛰는 아이들을 뒤쫓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전방에 들어가 하드 하나 사서 애들처럼 쩝쩝 소리를 내며 먹게 되곤 했다. 그러면 이곳이 고향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살았던 모습인 것만 같아서, 그 한결같은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향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현재 내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연남동이다. 처음 식당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때, 마침 인근에 살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그 동네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며 한탄했다.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상가들이 다 망치고 있다고. 그러면서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 은근한 협박의 소리도 들었다. 약간의 죄책감도 들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 한적한 주택가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그래서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건물에 덥석 계약을 하고 식당문을 열었다. 그리고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오픈 전에 꼭 산책을 한다. 빙그레 간판을 달고 있는 우유대리점에서 출발해 담장 밖으로까지 흘러내린 포도나무덩굴의 오래된 집을 지나 단층집 이층집 마을식당을 지나간다. 연남동은 불광동과 다르지 않아서 좋았다. 새로운 고향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의 말대로 1년 사이 한산하던 주택가에 십여개의 점포가 새로 들어섰고 골목은 예전 같지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산책을 하며 변해가고 있는 그 골목을 눈에 담는다. 새로운 고향의 역사를 간직하려는 사람처럼. 허물어진 건축물 앞에서 묻는다. 네 고향은 어디인가. 그리고 또 묻는다. 이곳은 누구의 고향인가.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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