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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자칼럼]바보야, 문제는 ‘갓물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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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인근 경기도 신도시에 들어왔던 한 분식체인점이 근래 문 닫았다. 휑하던 동네에 먼저 자리잡아줘 고마운 곳이었는데 안타깝다. 추정컨대 이유는 몇 가지다. 일단 경쟁업체가 늘었다. 재료비, 인건비 등도 올랐다. 그럼에도 장사가 제법 되는데 왜 문을 닫아야 했을까. 핵심 문제는 따로 있다.

10평도 안되는 가게에 월 250만원씩 임차료를 낸다고 한다. 한 줄에 1500원짜리 김밥이라면 몇 줄을 팔아야 할까. 단순 계산으로 1666개, 하루에 55줄이다. 재료비, 연료비는커녕, 직원 인건비까지 온전히 빼고 추산해서 이렇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노력봉사를 해도 가게를 겨우 굴릴까 말까 한 처지가 된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인건비 때문에 물가 인상을 걱정하는 각계 목소리가 높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나 가장 큰 부담은 임차료다. 요즘 동네에는 제법 손님이 드는 데도 문을 닫는 이런 가게들이 한둘이 아니다. 주요인은 월 250만~300만원을 넘나드는 월세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갓물주’란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한국자본주의2: 왜 분노해야 하는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치에 입성하기 전인 2015년 말에 쓴 책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짚은 저서로 나름 유명했다. 장 실장은 불평등의 주요인으로 임금 격차를 지목했다.

이 책의 뼈대는 이렇다. ‘한국 사회의 소득격차는 주로 임금에서 발생한다. 자산 격차보다 노동소득 격차를 줄여야 한다.’ 저자는 부동산 등 자산 격차 확대를 지적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차별화하기도 했다.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지당한 말씀이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정부 정책 방향이 이런 판단 아래서 나왔다고도 여겨진다.

한데, 과연 임금격차가 가장 문제일까. 월 150만원 버는 저임금 노동자라도 밥을 굶지는 않는다. 패딩도 사 입고 스마트폰도 쓴다. 한국 경제는 선대들이 춘궁기 나무껍질까지 벗겨먹으며 손발이 닳도록 고생한 덕에 이 정도까지는 올라왔다. 지금 서민의 정작 걱정거리는 발 뻗고 누울 집이 없거나, 임차료가 비싸다는 사실이다.

자, 여기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대기업에 다니는 두 동창생이 있다고 치자. 노동소득은 같다. 그런데 ㄱ씨 자산은 15억원이다. ㄴ씨는 5억원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ㄱ씨는 강남에 아파트가 있고, ㄴ씨는 지방에 산다. 여기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문제는 자녀들이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처럼 ‘계층사다리’가 끊어진 세상 한복판에 놓인 현실을 보면 섬뜩하다.

장 실장 논리구조라면 ㄱ씨와 ㄴ씨의 자산 격차를 가능케 한 주요인은 부모의 노동소득이어야 옳다. ㄱ씨 부모는 대학을 나와서 은행을 다니며 목돈을 모았을 수 있다. ㄴ씨 부모는 막노동일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10억원의 격차가 주로 부모의 노동소득 차이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역별 부동산 가격차가 커지고 하루가 다르게 ‘불로소득’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최저임금? 가능하면 1만원까지도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 하나 최저임금 수천원 올려주자는데도 이토록 시끄러운 근본 이유는 따로 있는 사실을 똑바로 보자. 소득주도·혁신성장도 아랫물과 윗물이 섞이게 하지 않는 한 어렵다. 막노동꾼의 자식은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것조차 이미 어려워졌지만, 부동산 불평등까지 짓누르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는 한국에 미래는 없다.

정말 우리는 왜 분노해야 하는가. 드러난 불평등을 앞세워 ‘분노 팔이’를 해선 정치꾼밖에 안된다. 부동산을 제대로 건드리면 정권 기반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공포감은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들어선 정부인지 거울 속 자신에게 물어보라. “바보야, 진짜 문제는 지대야!”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산업부 ㅣ 전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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