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43309984 0012018021443309984 09 0902001 5.17.10-RELEASE 1 경향신문 0

[경제와 세상]억수로 운 좋은 사나이

글자크기
경향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걸 보면서 ‘역시나’ 했다. 그는 지금까지 억세게 운 좋은 삶을 살았는데, 이번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는 신출귀몰한 그의 재테크(?) 실력이 잘 보여준다. 1995년의 일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이 부회장에게 60억8000만원을 증여하면서 증여세 16억6000만원을 냈다. 나머지 44억2000만원으로 이 부회장은 비상장 상태이던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사들였다. 1년 후 이들 회사가 상장해 주가가 크게 오르자 이 부회장은 주식을 매각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에스원 주식을 1만9000원에 사서 30만원에 팔았고, 삼성엔지니어링은 5000~5500원에 사서 5만9000원에 팔아 모두 560억원을 챙겼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 삼성 계열사들이 동원됐다. 에버랜드는 에스원 주식을 헐값에 넘겼고, 삼성생명이 에스원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주가를 끌어올려줬다. 이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팔 때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이 주식을 사들여 이 부회장이 높은 주가에 차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정황상으로는 주가조작 의혹이 뚜렷했지만, 이들 사건은 모두 당시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역시 일반인들이 기대하기 어려운 운이었다.

이 부회장은 1996년 3월에는 제일기획 전환사채를 사서 20%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그리고 1998년 11월 이를 팔아 140억원을 챙겼다. 이때도 삼성화재가 제일기획 주식을 대량 매입해 이 부회장의 차익 실현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해서 44억6000만원으로 시작한 이 부회장의 ‘종잣돈’은 3년 만에 7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렇게 종잣돈을 마련한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에 위치한 기업들의 지분을 확보해간다. 이 부회장은 1996년 12월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48억3000만원어치(지분 25.1%)를 엄청난 헐값에 사들여 단숨에 에버랜드의 1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때도 이 부회장은 엄청 운이 좋았다. 인수 우선권이 있는 기존 주주들이 모두 대박의 기회를 포기하면서 이 부회장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 대주주가 된 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을 왕창 사들였다. 이런 식으로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카드·삼성SDI→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됐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승계하기 위한 핵심고리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 부회장은 비상장회사였던 삼성SNS와 삼성SDS 등 삼성계열사 지분을 헐값에 사들여 몇 십배, 몇 백배의 대박 재테크 신공을 이어간다.

이러던 와중에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쓰러지면서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 핵심 중의 핵심이 바로 삼성물산 합병이었다. 이 부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던 삼성에버랜드가 이런저런 인수·합병을 거쳐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렇게 이름을 세탁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추진한 것이다. 자산가치 등의 측면에서 세 배 이상 덩치가 큰 삼성물산을 제일모직이 사실상 먹어 삼킨 합병안이었다. 삼성물산 지분은 하나도 없었지만, 제일모직의 지분은 많은 이 부회장에게는 역시 유리한 합병안이었다. 역시 이 부회장은 운이 좋았다.

그런데 최순실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이 부회장의 운도 다했나 했다. 그는 삼성그룹 승계권을 확보하기 위해 뇌물을 공여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2월 구속 수감됐다. 이후 지난해 8월에 열린 1심 판결에서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번 2심 판결은 이 부회장의 운이 다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각종 스포츠재단에 대한 제3자 뇌물혐의도 인정하지 않았고, 삼성물산 등의 합병도 승계작업을 위해 이뤄진 게 아니라고 봤다. 그렇게 해서 이 부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보통사람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이재용 부회장. 그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일까. 한자 풀이에 따르면 ‘운명(運命)’은 사람의 힘으로 바꿀 여지가 있는 ‘운’과 하늘의 뜻으로 사람이 바꿀 수 없는 ‘명’이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이 부회장이 돈의 힘으로 운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으나, 명은 바꿀 수 있을까. 이번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하늘의 뜻을 의미하는 명이라고 생각한다.

풀려난 이 부회장이 금력(金力)으로 바꾼 자신의 운을 과신해 명을 거스르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