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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세상 읽기] 노동하는 삶의 무게 / 조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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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설을 맞아 위민(餘敏·가명)은 고향인 중국 장시성 농촌의 눈꽃 사진을 보내왔다. 광둥성 선전에서 처음 만난 게 벌써 오년 전이다. 애플사의 하청기업으로 익히 알려진 폭스콘 공장에서 온종일 아이폰 덮개만 끼우다 “숨이 막혀” 그만두고 한동안 보험 상품을 팔았다. 조립라인의 공장노동자와 달리 보험판매원은 제 맘대로 시간을 조정하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며 서비스 계약직 예찬론을 편 적도 있다. 도시와 농촌의 문화를 대별하는 연구자의 고루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스로 돈도 벌고 요리도 하는데 굳이 결혼하고 싶지 않다”며 당당히 비혼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왕’의 영예를 탐했던 것도 잠시, 위민은 이년 전 귀향했다. 도시의 지인이라곤 공장 동료가 전부인데, 인간관계가 투자금이나 다를 바 없는 보험업계에서 성공할 리 만무했다. 공장으로 되돌아갔지만 집값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메트로폴리탄 도시에서 최저임금으로 연명하는 삶이란 충분히 괴로웠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고향에서 중매 제의가 들어왔다. 남자는 삼촌뻘의 나이였지만 마을에 새 집을 지었다는 것만으로 위민과 부모의 낙점을 받았다.

작년 여름 그녀의 고향을 찾았을 때 나는 “농촌 출신 노동자의 입장에서 농촌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문명의 역류 여행”이라며 중국의 도농격차를 비판했던 쑨리핑(孫立平) 칭화대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낡은 스쿠터가 비포장도로의 먼지를 쓸어 담으며 우리를 소도시까지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돼지 울음만 간간이 들리는 마을의 적막함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시생활의 리듬이 몸에 밴 위민에게도 귀향은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달리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그녀를 복잡한 노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소규모 의복공장에서의 임금노동이 전부가 아니었다. 위민의 부모도 집을 개축하는 상황이라, 공사를 마무리할 돈이 부족한 아버지가 제 형에게 아쉬운 부탁이라도 하려면 본인이 먼저 나서 큰집 손자라도 돌봐야 했다. 정식 혼례를 치르기 전까지는 새로 지은 집도, 시댁에서 받을 예단도 온전히 제 것이 아니라는 불안감에 예비 시댁을 찾는 발걸음도 잦아졌다. 외지에서 일하는 약혼자가 바쁘다며 설에 예정되어 있던 혼례를 미룬데다 고부갈등이 이미 시작된 탓에 위민의 명절 인사는 그리 밝지 않았다.

<분배정치의 시대>에서 제임스 퍼거슨은 타인의 소득원에 대해 분배를 요구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고가 따른다며 이를 ‘분배노동’이라 명명했다. 위민이든, 다른 누구든 오늘날 임금노동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속, 배당, 원조, 용돈, 장학금, 지원금, 공적 부조, 친구나 친척의 도움, 사기, 구걸 등 법적, 도덕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분배노동은 역사적으로 늘 있어왔지만, 임금노동의 불안정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더 절실하고, 때로는 더 폭력적인 형태를 띤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배노동이 삶 속에서 호혜적 의무를 구축하는 오랜 과정의 결과임을 감안한다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임금노동만큼이나 분배노동 역시 고단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노동의 무게는 해고, 파업, 산재 등 가시적인 사건만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임금노동과 분배노동이 겹겹이 퇴적된 삶-노동의 무게는 오랫동안 일상을 짓누르면서 말 그대로 골병이 들게 한다. 삶이 곧 노동일 때 명절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노동하는 삶의 무게를 재차 확인하는 시간일까? 아니면 우리가 서로에 대한 의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고 좀 더 평등한 상호의존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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