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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상가 예절 / 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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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에서 온 후로 요즘 들어 장례식장 갈 일이 꽤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저의 인간관계도 많이 넓어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부모님은 아직도 제가 장례식장 가는 일을 곱지 않게 보십니다. 결혼도 안 한 여자애가 장례식장 드나드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요. 북에서 장례는 친지와 동네 사람, 직장 동료들이 함께 치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사는 동네에서 가끔 장례를 치르는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상갓집 쪽으로 머리도 기웃거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북에서는 남한처럼 장례식장이 따로 갖춰진 것도 아니고 보통은 집안 안쪽에 고인을 모시고 발로 가린 채 손님을 맞는 관습이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도 상가를 경계하는 부모님 생각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남한에 와보니 장례는 북한의 그것과 아주 달랐습니다. 우선, 사는 곳의 입주민 간 왕래가 잦지 않은지라 어느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것조차 집이 아닌 병원에서 치르다 보니 가겠다고 선뜻 나설 일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장례식장이 따로 있어 손님을 전문적으로 맞이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결혼식에는 아니 가도 장례식에는 꼭 간다’고 할 정도로 여러 예의 중에서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요성을 안다고 하더라도 장례에 가본 적이 없는지라 몸가짐, 행동거지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 천지였습니다.

처음에 지인들 따라 장례식장에 갔을 때 주변 도움으로 인사하고 식사한다고 앉을 때까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고인의 사진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정중하게, 서로를 위로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저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구석에서 눈도 제대로 들지 못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께 죄지은 것 같아 앞에 있는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습니다.

그렇게 두세번 동료, 지인과 다녀오니 이젠 장례식장을 둘러보고 고인의 사진도 눈여겨보고 다른 문안객들도 살펴보는 등 여유가 생겼습니다. 인사를 드려도 먼저 나서주는 이가 있어 저는 뒤에서 얌전히 인사만 드려도 되었습니다. 고인에 대한 덕담도 윗분들이나 선배, 동료들이 먼저 나눠주셔서 저는 옆에서 예의만 차리면 되었습니다. 음식도 같이 먹게 되니 그간 만나기 힘들었던 동료도 보면서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만 않았습니다. 항상 같이 갈 수 있는 동료가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혼자 장례식장에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찍 도착해서도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다른 문상객들이 인사 나누는 모습을 관찰해야만 하였습니다. 머릿속에 어떤 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수도 없이 되짚어 보았습니다. 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도 혼자 앉아 음식상을 받는 일이 익숙지 않아 눈치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주변 동료며 지인들이 밤늦게라도 차를 끌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가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조심해서 다녀오라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사회적 도리를 깨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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