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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연출가 이윤택 성추행 파문…문화계 전반에 퍼지는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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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학·영화계에서 성폭행 관행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극계에도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도제식 문화가 강하고 규모가 작은 데다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다보니 그간 성추문이 일어도 공론화되기 힘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연극 배우 이명행이 성추행 논란으로 출연 중인 연극에서 최근 중도하차한 데 이어 14일 대표적 연출가인 이윤택이 과거 배우를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돼 활동을 중단했다.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이날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사진)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10여 년 전 지방 공연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당시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그날도 자신을 여관방으로 호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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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이 연출가가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종용했고 이에 ‘더는 못하겠습니다’고 말한 뒤 방을 나왔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그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나는 도망다녔다. 무섭고 끔찍했다. 그가 연극계선배로 무엇을 대표해서 발언할 때마다, 멋진 작업을 만들어냈다는 극찬의 기사들을 대할 때마다 구역질이 일었지만 피하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선배쯤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김 대표는 이 연출가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정황상 해당 인물이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임을 암시했다. 이윤택은 대표적인 연극 연출가 중 한 명이다. 30년 넘게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면서 한국 전통과 서구적 연극 양식을 접목한 독자적 연극 세계를 구축했다. ‘혜경궁 홍씨’, ‘오구’, ‘백석우화’, ‘문제적 인간 연산’ 등 올리는 작품마다 호평 받았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각종 연극상을 수상했다.

김 대표의 폭로 뒤 이윤택 연출은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를 통해 ‘예전 일이라도 잘못된 일이었고 반성하는 게 맞다’며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희단거리패는 3월1일부터 이윤택 연출로 예정됐던 ‘노숙의 시’ 공연을 취소했다.

앞서 이 연출가가 공공 극단에서 작업할 당시 직원을 성추행해 해당 극단에서 더이상 함께 작업하지 않기로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해당 극단 측은 연출가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은 채 “당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피해자가 공론화되는 것을 원치 않아 앞으로 그 연출가를 극단 공연에 참가시키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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