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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내 곁에 '설마']"화재 발생!" 멀뚱멀뚱 신경도 안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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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일상 속 부주의가 쌓여서 결정적인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설마가 참사로 이어진 끔찍한 악몽을 우리는 반복해왔습니다. 지금도 무심코 지나친 안일함이 사고의 싹을 키울지 모릅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자칫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매일 접하는 익숙한 환경이지만 사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진 않은지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합니다.

[④4분만에 '끝' 청량리역 화재대피 훈련…직원들, 승강장에 한명도 안내려와]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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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3시44분. 청량리역 1호선 승강장에 "대합실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당시 지하철을 기다리던 수백 명의 시민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후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조금 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2·3·4·5번 출구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방송이 이어졌지만 자리에서 발을 떼는 사람은 없었다. 방송 4분 뒤인 오후 3시48분 훈련이 종료됐다. 승객들은 평상시처럼 지하철에 다시 올랐다. 실제가 아닌 훈련상황임을 안내받은 시민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47명의 생명을 앗아간 밀양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2주도 채 안됐지만 형식적 재난대비 훈련과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이날 청량리역에서 진행한 훈련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폭발물 화재상황을 대비한 것이었다. 현재 서울 지하철 모든 역에서 화재 상황을 설정하고 자체 훈련을 실시 중이다.

청량리역에 따르면 이날 훈련은 서울교통공사의 '역사화재 매뉴얼'에 따라 방송과 초동조치를 진행해 4분 만에 초기진화에 성공했다. 매뉴얼에는 화재가 발생하면 역 직원들은 △119 신고 △장비휴대 출동 △개찰구 비상모드 전환 △배연·제연설비 가동 △수막설비 가동(승강장 화재시) △초기진화, 승객대피와 응급구호 등을 5분 내로 실시하도록 돼 있다.

청량리역 관계자는 "실제로 개찰구 출입구를 비상모드로 전환하거나 제연설비를 가동하지는 않았지만 철저하게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다"며 "훈련하면서 스프링클러 등을 작동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작동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하철 승강장에서 시민들의 대피를 유도하는 직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초기진화, 구조요청 등의 초동조치를 부여받은 3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직원들은 상황이 완료될 때까지 시민의 대피를 도와야 한다.

이번 훈련에 참여한 청량리역 직원들은 7명이었다. 즉 4명은 시민들의 대피유도에 나서야 했지만 이들은 모두 역무실 앞에서만 대피시키는 훈련을 했다.

특히 청량리역은 전국적으로 노인 이용객이 가장 많은 지하철역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이 하루 평균 1만98명이나 이용했다. 이날 역시 승강장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을 신속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게 핵심이다. 평소 형식적인 훈련으로는 비상상황이 터졌을 때 제때 대응하기 어렵다.

직원들의 안일함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불감증도 문제다. 역을 빠져나가는 승객을 제외하고 훈련에 동참하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역무실에서 화재 발생 대비 훈련을 하겠다는 예고 방송조차 듣지 못한 사람들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모씨(76)는 "다들 가만히 있어서 훈련일 거라고 예상했다"며 "진짜로 불이 난 것도 아니니까 그냥 지하철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취재진과 함께 훈련과정을 지켜본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게 훈련이냐"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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