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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행정처장 교체는 예견된 일"…金 대법원장의 후속조치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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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대법원장, 金 행정처장 사실상 ‘경질’
진보·보수 다른 길 걸어온 두 사람...
판사 PC 강제 개봉 놓고 충돌했나
대법관들 입장 발표도 인사 촉발?

김명수(59·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이 25일 김소영(53·19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전격 교체했다. 지난 24일 김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인적 쇄신을 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뒤 하루만에 후속 조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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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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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만보면 김 대법원장의 사법개혁과 행정처 개편, 법원 수뇌부 인사가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법원 정기 인사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김 처장이 행정처장으로 부임한 지 불과 6개월 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후임자도 파격적으로 선택했다. 지난 2일 취임해 대법관이 된 지 23일 밖에 안 된 안철상(61·15기) 대법관을 임명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인사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의 대법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경우 재판부에 복귀하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통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되면 2~3년 가량 근무하던 것이 관례다. 또 대법관에 임명되고 2년 정도 지난 인물들 중에서 법원행정처장을 임명하던 것이 관례였다.

이번 인사는 대법원장이 "물러나 달라"고 요청해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법원내에서는 이번 인사를 사실상 경질성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과 김 행정처장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사람은 법원 내에서 대표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김 대법원장은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했다. 반면 김 행정처장은 법원 내 엘리트 모임으로 통하는 보수 성향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다. 또 김 대법원장은 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는 반면 김 행정처장은 사법정책심의관, 정책총괄심의관 등 행정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대법원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판사 컴퓨터 강제 조사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은 진상규명을 강조하는 반면 김 행정처장은 본인의 동의를 얻어서 개봉해야 한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특히 추가조사위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PC를 강제 개봉하려고 하자 이 문제를 놓고 두 사람은 부딪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 한 관계자는 “당시 김 행정처장이 ‘임 전 차장 PC 조사는 조사 대상이 아니지 않느냐’고 문제 제기를 하자 대법원장이 ‘못하게 하는 것 보니 문제가 있는 모양이죠?’라는 취지로 면박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고 했다.

지난 22일 추가조사위가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청와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법원 재판 때 청와대와 행정처가 교류한 정황이 있는 문건을 발견했다고 밝힌데 대해 이튿날 대법관 전원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면으로 반박하는 입장을 낸 것이 이번 인사를 촉발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법관들의 입장 발표 직후 대법원은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놓고 대법관들과 견해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자 "사실이 아니다. (대법관들이) 대법원장과 논의 후에 발표한 것"라고 해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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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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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곧바로 “참담한 심정이다. 법관들이 받았을 충격과 분노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다”라면서 “행정처 쇄신 등 후속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원 고위 간부는 “대법관들이 사상 초유의 반박 자료를 내며 추가조사위를 비판했는데 이는 김 대법원장에게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이었다’며 법원 내부에선 하루 만에 대법원장이 후속조치를 언급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임명 23일 된 대법관 행정처장에 발탁
블랙리스트 후속 조치 위한 ‘코드 인사’
일각선 “행정처 경험없는 수뇌부 불안”
“이번엔 사법부 바로잡을 기회” 기대도

이날 신임 행정처장으로 임명된 안 대법관은 김 대법원장이 처음으로 임명 제청한 대법관이다. 그는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이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행정처 경험도 없다. 김 대법원장과 여러모로 코드가 맞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안 신임 행정처장이 김 대법원장이 밝힌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후속 조치 등 사법부 개혁을 지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원 내부의 반응이다. 서울중앙지법 한 법관은 “김 “대법원장이 본격적으로 사법부를 장악해 자신의 방식대로 개혁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며 “전임 대법원장의 과오를 들춰내는 방식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지금 정권과 참 많이 닮았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행정처를 축소하겠다고 해놓고 대법관들 중 자신이 임명제청한 두 사람 중 한 명을 고른 것보니 결국 자기 사람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대법원장도, 행정처장도 행정처 경험 한번 없는 사람들이라 수술 경험 없는 의사가 메스를 든 것처럼 불안불안하다"고 했다.

반면 “이번에야말로 사법부를 바로잡을 기회”라며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방법원 한 관계자는 “행정처가 성향이 다르다고해서 법관 뒷조사나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난다”며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가 한 짓과 다를게 뭐냐”고 했다. 수도권 한 판사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땅에 떨어진 이 마당에도 법원을 지키려고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법원의 개혁도, 발전도 영영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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