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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임자 입과 靑 캐비닛 문건, 조윤선 재판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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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항소심, 1심 무죄 깨고 징역 2년 선고

김기춘은 1년 추가돼 4년刑

재판부 "박 前대통령도 공범"

"조윤선 피고인, 변명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석방된 지 180일 만인 23일 다시 법정에서 구속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재판장 질문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10여 분 뒤 그는 겉옷 속에 찬 수갑을 가리려는 듯 두 손을 어색하게 모은 채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올랐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는 이날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들어 정부 지원을 배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 전 수석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조 전 수석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러나 지난해 7월 1심 재판부가 블랙리스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국회 청문회 위증 혐의만 일부 인정하면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었다.

조선일보

석방 180일만에 다시 구치소로 -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이른바‘블랙리스트’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치소행 호송차로 걸어가고 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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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는 "조 전 수석이 정무수석실 비서관들에게 지원 배제에 관여하도록 지시하거나 이를 보고받았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임자였던 박준우 전 정무수석이 조 전 수석에게 지원 배제 업무를 인수인계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고, 부하 직원이었던 신동철·정관주 전 비서관들도 조 전 수석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준우 전 수석은 지난해 11월 2심 법정에 다시 증인으로 나와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박 전 수석은 "조 전 수석에게 좌파 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문제가 돼 '민간단체 보조금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고 이후에도 정무수석실이 담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인수인계했다"고 증언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니 챙겨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신동철 비서관과 의논하고 처리하면 된다고 전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조 전 수석의 혐의를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서 발견된 '캐비닛 문건'도 재판부 판단을 뒤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문건에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정무수석실과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와 보고를 주고받은 정황이 담겼다. 재판부는 "정무수석실 내 좌파에 대한 지원 배제 검토나 논의가 수석의 지시나 승인 없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선고 직후 조 전 수석의 남편이자 변호인인 박성엽 변호사는 상기된 얼굴로 "할 말이 없다.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날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김 전 실장은 결심 공판에서 "식물인간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인 문체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해 형량을 높였다. 1심은 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었다.

재판부는 또 1심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도 블랙리스트 범행의 공범(共犯)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지원 배제 관련 보고를 지속적으로 받았고, 일부 사례는 직접 언급해 문제 해결을 지시하기도 했다"며 "단순히 '좌파 지원 축소 및 우파 지원 확대'가 바람직한 정책임을 선언한 데 그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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