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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갑질문화 척결" 계약서 '갑·을'→'동·행' 바꾼 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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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개발공사 신선한 시도…"함께 행복하자는 의미"

사회 전반 갑질문화 여전…"소통 분위기 조성 필요"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청사 건립 공사를 시행하면서 '동'과 '행'은 다음과 같은 위·수탁협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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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충북도와 충북개발공사가 맺은 '충북도의회 청사 건립 위·수탁 협약서'의 첫 문장이다.

이 협약을 위해 충북개발공사가 만든 협약서 초안을 받아 본 충북도청의 공무원 A씨는 생소한 단어를 접했다. '갑(甲)'과 '을(乙)'이라는 단어가 '동(同)'과 '행(幸)'으로 바뀐 것이다.

A씨는 "협약서 초안을 처음 받아 검토할 땐 동·행이라는 용어가 너무 생소했지만, 함께 행복하자는 의미를 담아 갑·을 대신했다는 말을 듣고 신선한 시도라고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에게 '갑'으로 연상되는 행정기관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동·행계약서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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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개발공사가 동·행 계약서를 도입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당시 계용준 사장이 직원회의에서 제안하면서 처음 시도됐다.

시행 초기에 직원들은 이런 계약서에 대해 다소 어색하게 받아들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을 하는 업체, 기관 등으로부터 좋은 반응이 나오면서 충북개발공사의 모든 계약과 협약에서 갑·을이 사라지고, 동·행이 사용되고 있다.

계 사장은 "각종 계약에 등장하는 갑과 을이라는 표현이 우월적 지위의 순서를 정한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북도가 설립한 유일한 공기업으로서 고객만족서비스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동·행 계약을 직원들에게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계 사장은 "용어 하나 바꾼다고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변화의 시작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5년 9월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난방 관련 공사를 업체에 맡기면서 계약서에 갑·을 대신 동·행을 사용한 것이 알려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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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북구청은 이 아파트의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제도화에 나섰다.

성북구청은 동행계약서 표준안까지 마련해 산하기관을 포함해 위·수탁 계약, 업무협약, 근로계약 등에 이를 적용했다.

이후 다른 행정기관에서도 '상·생', '명·품' 등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또 다른 '동·행 계약'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갑질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작은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위계와 서열을 중시하는 '갑질 문화'가 고질적인 병폐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에도 육군 대장 부부가 공관병에게 텃밭 관리를 시키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등 갑질과 관련된 이슈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충북대 사회학과 허석열 교수는 "우리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사회 전반의 권위주의는 그대로 남아 약자가 자기주장을 펴기 힘든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작은 문제부터 균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갑질 문화 해소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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