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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비판적 판사 전방위 사찰·판사들 카페 대응책 만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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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법원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 조사 결과

“대법원, 원세훈 2심 재판부 성향 파악 문건도 발견”

판사 개인성향 파악해 사법행정 개혁요구 무마 시도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연구회 탄압 추가 정황도



한겨레

대법원 청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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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의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된 문건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사건을 심리하던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고 청와대에 보고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특정 연구회 소속 판사들에 대한 동향 파악을 넘어, 대법원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판사들에 대해 전방위적 사찰을 벌이고 선제적 대응책까지 마련한 정황도 밝혀졌다.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추가조사위)는 22일 지난 2달간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에 대한 추가조사 결과를 담은 요약보고서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3월 이인복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한차례 조사를 벌였지만, 문제가 되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담겼다고 알려진 행정처 컴퓨터 등에 대한 물적 조사 없이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는 취지의 발표를 발표하며 ‘반쪽 조사’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뒤인 지난해 11월 추가조사위가 새로 구성돼 두달간 물적조사를 포함한 추가조사를 벌였다.

이날 추가조사위 조사 결과를 보면, 원 전 원장의 ‘정치개입’ 사건 항소심을 맡은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이 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제1심의관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다음날(2015년 2월9일) 작성된 이 문건에는 “판결 선고 전 외부기관(BH·청와대) 문의에 대해 우회적?간접적으로 항소심 담당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을 알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청와대를 포함한 외부기관, 여야, 언론, 법원 내부 동향을 파악해 정리하고 향후 대응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조사위는 “선고 전후에 걸쳐 특정 외부기관과 사이에 특정 재판에 관한 민감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한 정황, 선고에 앞서 외부기관의 문의에 따라 담당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거나 파악하여 알려주려 했다는 정황, 선고 후 외부기관의 희망에 대해 사법부의 입장을 외부기관에 상세히 설명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사법행정권이 재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고,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행정처가 법관들의 온라인 모임공간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대응책을 담은 문건도 발견됐다. 행정처 기조실에선 2014년 10월24일 일선 여성판사들을 중심으로 개설된 포털사이트 ‘다음’의 익명 카페 ‘이판사판야단법석’의 현황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내용의 ‘이판사판 다음카페 현황보고’ 문건이 작성됐다. 카페 글과 댓글에 대한 정보 수집은 행정처 심의관이 카페 글에 접근할 수 있는 계정을 확보하거나 별도로 회원가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듬해 2월14일 작성된 이 문건을 보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카페의 자발적 폐쇄를 유도할 것”, “법관윤리강령과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이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설득 및 엄포용 카드로 활용하는 내용” 등이 대처방안으로 포함됐다. 다만 이 문건을 작성한 심의관은 해당 문건은 기조실장 등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추가조사위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해당 심의관이 기조실장에게 보고했다는 문건에는 “선배 법관이 운영진에게 신중한 운영, 위험성 있는 글의 삭제 또는 실명화를 권유하는 방안, 선배 법관이 다수 가입해 내부변화를 모색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판사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사법행정 개선 요구를 무마하려 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도 발견됐다. 행정처는 2016년 1월29일 국제인권법연구회 내부모임인 ‘인사모’에서 “수직적, 관료적 사법행정체계를 수평적, 민주적 운영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사법행정위원회에 참여할 판사를 판사회의에서 선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논의되자, 행정처 기조실에서는 이 모임에 참석한 판사들을 우리법·인권법 연구회 경력 등을 중심으로 분류하는 보고서를 다음달 24일 만들었다. 또 “치밀한 대응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 소수 핵심 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다수 일반 판사들의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핵심 그룹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는 대응책도 문건에 포함돼 있다. 사법행정위원회가 출범 뒤 위원별 추천 절차를 진행하던 고등법원장에게는 특정 연구회 경력, 보수·진보 성향 등을 중심으로 분류한 후보자 추천 명단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밖에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에 출마한 판사(우리법연구회 회원)를 견제하기 위해 최선임자를 대항마로 내세우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처에 비판적인 연구회를 탄압하려 한 구체적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행정처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016년 말 ‘공동학술대회’ 개최 논의에 들어가자, 행정처는 중·단기 대응방안을 나눠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종헌 당시 행정처 차장 지시로 기조실에서 작성된 ‘대책문건’을 보면, 행정처는 “공동학술대회를 연구회 내부로 축소시키고 외부 발표를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이후 개최가 확정되자 ‘공동학술대회 대응을 중심으로 한 단기 방안’과 ‘인사모 해소 유도 및 제재를 중심으로 한 중기 방안’ 등을 세분화한뒤, 중기 대응방안의 하나로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실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연구회에 대한 예산 삭감 및 다른 연구회 행사 개최로 연구회를 견제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문건은 실장회의 및 처장 주례회의에 보고됐다고 한다.

추가조사위는 “법관이 사법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사법행정 담당자가 법관들에 관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하여 이념적 성향, 인적 관계와 행적 등을 분석?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였다면, 이러한 문서는 그 대응 방안이 실현되었는지 또는 인사상의 불이익 조치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그러한 경위와 목적으로 작성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법관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고 정리했다. 다만 “대응방안의 실행 여부나 누가 관여했는지 여부는 대해서는 추가조사위의 조사범위를 넘는 것”이라며 문건 관련 인적조사는 문건 작성 경위와 보고 관계 등을 확인하는 선에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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