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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가상화폐에 비하면 껌"…고위험투자에 빠져드는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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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성직(32)씨는 수년간 예·적금으로 모은 돈의 일부인 500만원을 최근 코스닥 시장에 투자했다. 김씨는 애초부터 원금을 잃는 한이 있어도 기대수익률이 높은 분야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관심을 둔 곳은 가상화폐 시장이었지만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신규 가입을 차단해 차선책으로 코스닥을 택했다.

김씨는 “가상화폐 시세만큼 널뛰기하진 않지만 코스닥 시장에도 급등락을 반복하는 종목이 꽤 있어 시세차익을 시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 코스닥 시황이 달아오르고 있는 만큼 목돈 만들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규제 강화로 가상화폐 투자에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다른 투자처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가상화폐의 ‘극단적인’ 수익률(또는 손실률)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다른 투자 분야의 어지간한 리스크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태가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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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시민이 서울 중구 가상화폐 거래소 앞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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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화폐 생각하면 펀드 수익률은 눈에 차지 않아"...테마주 쫓는 젊은 투자자

회사원 조성준(33)씨도 요즘 아껴 모은 돈 1000만원을 투자할 코스닥 종목을 찾고 있다. 조씨도 처음에는 가상화폐 투자에 흥미를 느꼈으나 외부 변수가 너무 많다는 판단에 투자처를 일단 주식시장으로 변경했다.

조씨는 펀드 가입을 상담받기도 했지만 7~8% 수준으로 설정된 펀드의 목표수익률을 보고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가상화폐로 원금의 100배를 벌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도 들으니 10%도 안되는 펀드 수익률은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직접 크게 오르내리는 종목을 골라 매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런 생각은 조씨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 시장으로 발길을 돌린 투자자 중에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테마주’만 쫓아다니는 이들도 꽤 있다.

최근 가상화폐 투자를 접고 주식 투자에 뛰어든 자영업자 박종면(27·가명)씨는 “가상화폐에 간접투자하는 셈치고 관련주들을 사들이고 있다”며 “등락이 심하긴 하지만 가상화폐에 비하면 우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씨는 “무엇보다 가상화폐 거래는 24시간 내내 이뤄져 잠도 제대로 못자고 폐인처럼 몇개월을 살았는데, 증시는 개장과 폐장이 있어 현재는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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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투자한 가상화폐 관련주는 옴니텔과 위지트, 우리기술투자다. 옴니텔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을 운영하는 비티씨코리아닷컴 지분을 보유한 회사이고, 위지트는 옴니텔의 최대주주다. 우리기술투자는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지분을 갖고 있다. 모두 가상화폐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종목들이다.

◆ P2P 투자에 부동산 갭투자…“가상화폐 보고 용기내”

대학원생 양성은(가명·31)씨는 업체당 연간 1000만원에 묶여있는 P2P(peer to peer·개인간)대출 투자 한도가 올해 확대될 수도 있어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4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P2P대출 투자도 그 무렵 시작했다.

양씨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은 한반도를 덮친 가상화폐 열기를 느낀 후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P2P대출 시장은 매우 안전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며 “뒤늦게 가상화폐 투자에 참여하는 대신 좀 더 공격적으로 P2P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P2P금융협회는 최근 개인의 P2P대출 투자 한도를 연간 최대 1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가이드라인 개선안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금융위는 협회측 제안을 검토한 뒤 다음달 중 새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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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영규(34)씨는 가상화폐 열풍 이후 부동산 갭(gap)투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경우다. 갭투자는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금의 차액(差額)을 투자금으로 아파트를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김씨는 갭투자 자금 대출에 대한 부담과 매매 후 아파트 가격 하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갭투자에 섣불리 뛰어들지 못해왔다. 하지만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대출까지 받아가며 가상화폐 투자에 도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김씨는 “집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지역을 신중하게 골라 투자하면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검증 안된 ‘가상화폐 불패(不敗)’에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인생을 거는데, 어느 정도 검증된 ‘부동산 불패’는 안전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 “원금보장 안되는 건 마찬가지” 주의 당부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신드롬의 여파 속에서 달콤한 쾌감이나 상대적 상실감을 맛본 2030세대의 투기성향이 높아지는 사회 병리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상화폐라는 준비훈련 과정에서 얻은 위험투자 경험을 토대로 다른 영역에 대한 투자 도전 결정을 더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이라며 “인간은 누구나 이득을 남기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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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투자보다 리스크 요인이 적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금융투자가 원금 손실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가 체감하는 위험 정도가 가상화폐에 비해 약하다고 별 대책 없이 투자를 결정해선 안 된다”며 “덜 위험하다고 반드시 손실 피해가 적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가상화폐 시장에서 누린 높은 수익률을 재현하기 위해 실체 없는 테마주에 투자금을 몰아넣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예컨대 박종면씨가 보유한 옴니텔 주가는 지난해 11월 5000원대에서 한달여만인 12월 19일에 1만3000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후 이 회사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거듭해 1월 19일 종가 기준 6750원에 머물러 있다. 상당수 개인 투자자가 이익보다는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곽금주 교수는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것은 대부분 강한 중독성을 동반하는데, 특히 이윤을 얻었을 땐 그것에 대한 집착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며 “스스로를 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힘을 평소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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