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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담배 피러 나가면 근무시간서 뺀다네요"..빡빡해진 근태 관리에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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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주52시간 새 근태시스템 구축

다른 계열사 및 협력사 도입 잇따를듯

여건 안되는 회사들 '무급 야근' 늘까 걱정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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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희동 이재운 경계영 기자] 얼마 전까지 삼성전자(005930)의 지원 부서 등이 근무하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빌딩은 매일 밤 10시가 되면 건물 전체가 암흑에 휩싸였다. 자동 점등 시스템에 따라 소등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초 뒤면 야근하던 근무자들이 하나둘씩 불을 켜 금세 건물이 환해졌다.

앞으로는 삼성본관의 이런 밤 풍경을 더 이상 보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 방침에 따라 지난해 9월 가장 먼저 제도 시범 도입에 나섰던 삼성전자가 새해 들어 이에 맞춘 ‘근태(勤怠) 시스템’을 전 사업장에 구축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변화로 인해 다른 대기업들도 주 52시간에 맞춘 근무 변화가 새해 들어 급격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실제 제도를 적용받는 직원들 사이에선 ‘저녁이 있는 삶’이 정착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직무에 따라 일을 하고도 돈을 제대로 못 받는 ‘무료 봉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근무시간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자칫 상시적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야근 잦은 연구개발직 “수당 신청 막히는 것 아니냐”

삼성전자가 주 52시간 근무에 맞춰 지난 15일부터 적용한 근태 시스템의 핵심은 ‘비(非) 업무시간의 근로시간 배제’다. 기존 점심시간은 물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가거나, 로비에서 동료와 커피 마시는 시간까지 모두 근로시간에서 제외된다.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실제 일하는 시간을 철저히 52시간으로 관리,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상당수 삼성전자 직원들이 취지에 공감한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사업의 연구개발(R&D) 분야 직원들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한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회사 방침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초과 근무가 근무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으면 수당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염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연구개발직 A씨는 “업무 특성상 제품 개발 막바지에 접어들면 야근은 물론 휴일 근무도 할 수 밖에 없어 회사가 시행하고 있는 주 52시간 근무에서 사실상 제외돼 있다”며 “주말에 출근해도 수당 등록을 안 하고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새로운 근태 시스템 도입으로 편법을 쓰기도 어려워 업무별 성격에 맞는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근무하는 B씨는 “제도의 취지는 좋으나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 초과 근무를 하는데 눈치를 보거나 제약이 생기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삼성전자가 시행했던 ‘7·4제(오전 7시 출근·오후 4시 퇴근)’의 사례 등을 근거로 주 52시간 근무 제도의 정착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CE(소비자 가전) 부문 직원인 C씨는 “처음 7·4제를 시행할 당시 직원들의 기대감이 컸지만 결국 출근시간만 빨라지고 퇴근은 기존과 비슷하게 늦춰져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던 기억이 있다”며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인들 “삼성전자 제도만 따라하면 집에서 일할수도”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근무시간 단축 시행으로 동종업계 등 다른 대기업은 물론 삼성 내 다른 계열사들도 그 여파에 주목하고 있다. 임직원이 10만명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임직원들이 근무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시스템이 열악한 다른 회사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D씨는 “삼성전자의 변화에 따라 우리 회사도 52시간 근무로 분위기를 바꾼다며 야·특근 수당을 올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휴일이나 휴가 기간에도 일을 하는데 제도만 삼성을 따라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유통회사 직원인 E씨는 “야근 안 된다, 주말 특근 안 된다, 지침이 내려와도 담당 팀장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어제 시킨 보고서 다 됐냐고 확인한다”며 “합법적으로 수당을 안 주면서 회사 밖에서 일하고 결과물만 내놓으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삼성 내에서도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계열사에선 제도 시행 및 정착에 부정적 여론이 일부 감지되고 있다.

삼성의 한 계열사 직원은 “퇴근시간도 제대로 못 지키고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추가 수당 신청도 못하고 공짜 야근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근태 시스템이 전 계열사로 확대되면 근무에서 제외하는 시간은 매점갔다고 올리고 식당갔다고 올리는 식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도를 밀어붙이기 전에 연장 근무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연장근로나 휴일근무에 따른 인센티브가 큰 것이 제도상의 문제”라며 “평균 노동시간이 우리보다 낮은 국가를 보면 고용 유연화를 통해 업무량에 따라 탄력적인 인력 운용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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