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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엄마 손때 묻은 가게 문 열었어요"…슬픔 딛고 일어선 제천 참사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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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고 정송월씨 딸, 하소동 닭갈비 가게 지난 2일 문열어

단골 손님·시청 직원들 "용기 북돋아주자" 식당 찾아 위로

하소동 주민자치위원회 인근 침체된 상가 살리기 운동

주민들 "모두가 이웃사촌…화재 참사 트라우마 극복하자"

중앙일보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 참사로 어머니 정송월씨를 잃은 반현정씨가 18일 오후 어머니 정씨가 운영하던 식당에 나와 손님을 기다리며 벽에 걸려있던 어머니 그림을 어루만지고 있다. 반씨는 이날 제청시청 공무원들과 지인들이 많이 찾아주신 덕분에 장사가 그나마 좀 나았다고 말했다. 제천=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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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닭갈비 3인분 곧 준비해 드릴게요.”

18일 오후 6시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닭갈비 가게. 앞치마를 두른 반현정(27ㆍ여)씨가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반씨는 지난달 21일 발생한 제천 화재 참사로 어머니 고 정송월(사망 당시 50세)씨를 잃었다. 정씨는 그의 언니인 정송화(75)씨와 6년여 동안 이 가게를 운영하던 중 변을 당했다. 결혼기념일을 열흘 앞둔 때였다.

반씨는 “엄마와 한집에 살던 큰이모와 아빠가 사고 후 큰 충격을 받아 며칠 동안 앓아누우셨다”며 “나까지 흔들리면 안 될 것 같아 지난 2일부터 다시 가게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반씨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여대 항공서비스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10월부터 각종 행사를 대행하는 1인 기업을 운영 중이었다. 그는 “계획한 일을 접게 됐지만 지금은 가족이 더 소중하다"며 “엄마 손때가 묻은 가게를 예전처럼 손님이 북적이게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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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화재 참사로 어머니 정송월씨를 잃은 반현정(사진 왼쪽)씨가 18일 오후 어머니 정씨가 운영하던 식당에 나와 저녁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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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애도 분위기로 움츠렸던 하소동 상가 거리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반씨의 가게는 불이 난 복합상가건물(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다. 주민 지영호(61)씨는 “현정이가 문을 열었다기에 식당을 찾아왔다. 다른 유가족들도 용기를 내서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오후 7시가 되자 반씨의 가게에는 제천시청 여성가족과와 기획예산담당관실 직원 30여 명이 찾았다. 이종양 제천시청 여성가족과장은 “씩씩하게 슬픔을 이겨내는 현정씨를 돕기 위해 신년업무보고회 회식을 이곳에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천시청 36개 부서 600여 명 직원은 화재 참사로 미뤄뒀던 송년·신년회를 이날 하소동에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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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 참사로 지역 상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진 가운데 17일 오후 화재참사 인근 하소동 식당가가 찾는 사람없이 썰렁하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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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나서서 침체한 지역 경기를 살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용두동(하소동의 행정동 이름) 8개 직능단체 회원들이 날짜를 번갈아 가며 상가를 찾고 물건이나 음식을 팔아주는 것이다. 스포츠센터가 있던 화재현장 주변은 음식점과 술집 등 70여 개의 점포가 몰려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참담했던 당시 상황이 떠올라 발길을 돌리면서 상인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용두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 20명은 지난 17일 식당을 운영하는 송호성(50)씨 가게에 들렀다. 월례회의 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윤봉규(51) 용두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아직 웃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 상인들을 돕고 침체된 분위기 바꿔보려고 한다”며 “유족들과 어려움 겪는 하소동 상인들, 비판을 받는 소방관들 역시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시민 모두가 서로를 보듬고 일어서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 송씨는 “화재 이후 매상이 70% 가까이 줄어 월세 내기도 힘든 지경이었다”며 “텅 비었던 테이블이 주민들로 가득 찬 모습을 보니 힘이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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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 참사로 지역 상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진 가운데 17일 저녁 화재참사 인근 하소동 주민자치위원들이 한 식당을 찾아 식당주인을 위로하고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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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실내체육관에는 한 달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유족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제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노승구(65)씨는 “일주일에 닷새 정도는 분향소에 나와 유족 대신 상주 역할을 한다”며 “말없이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천시보건소와 충북광역정신복지센터 등에 소속된 상담원들은 유가족과 부상자들의 심리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화재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부터 상담사 30여 명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유족들을 1대1로 만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필요할 경우 정신과 진료를 권하고 있다. 윤용권 제천보건소 건강관리과장은 “정신적 충격을 받아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한 달 넘게 지속할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볼 수 있다”며 “이달 말부터 유족들뿐만 아니라 화재 진압에 투입됐던 소방관이나 참사 현장을 목격한 일반 시민에게도 심리치료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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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 참사로 지역 상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진 가운데 17일 오후 화재참사 인근 하소동 식당가가 찾는 사람없이 썰렁하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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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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