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타이 산골 마을에 감춰진 한국전쟁 ‘제2전선’의 비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② 도이 매살롱과 CIA 극비작전

산길 1시간 달려 도착한 ‘도이 매살롱’

국민당 잔당 제5군 본부 차렸던 마을

집집마다 자동차·위성안테나 넘치고

중국 관광객 태운 대형버스 물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마약 중심지

CIA 비호 아래 아편으로 군자금 마련

극비작전 ‘오퍼레이션 페이퍼’ 투입

중국 윈난 공격하며 한국전쟁 참여



한겨레

도이 매살롱 리조트로 개조한 1960~1980년대 국민당 잔당 제5군 훈련장. 가운데 정원이 연병장이었다. 정문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길은 입는 옷이 되었고, 먹는 밥이 되었고, 자는 요이불이 되었다. 길은 기쁨이었고, 노여움이었고, 슬픔이었고, 즐거움이었다. 길은 사랑이고, 연민이고, 자유다. 길은 내가 살아온 자취고, 내가 사라지며 남길 마지막 인연이다.”

그 길은 오늘도 내 앞에 펼쳐졌다. 정신없이 오르내리는 도이 앙캉 산길을 1시간쯤 달려 1089번 국도로 빠져나와 타똔에 닿을 때까지 화두는 오직 길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왼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버마 국경 산악을 끼고 달린다. 1시간쯤 더 북으로 올라가 반차로란 작은 마을을 지나면 이내 검문소가 나타난다. 총 든 군인들한테 “도이 매살롱”을 외치고 왼쪽 길로 꼬부라지면 다시 가파른 산악으로 접어든다. 국민당 잔당 제5군이 본부를 차렸던 도이 매살롱으로 가는 길이다.

도이 매살롱 산골로 들어서자마자 겨울을 알리는 신호가 곳곳에 피어올랐다. 해마다 이맘때면 산사람들은 풀을 태우며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타이, 버마, 라오스 국경 하늘을 누렇게 뒤덮는 화전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머잖아 치앙마이를 비롯한 타이 북부지역은 미세먼지 지수가 350~600마이크로그램(세계보건기구 안전치는 50)까지 치솟아 또 한바탕 난리 칠 것이고. 이미 크로스보더(cross-border) 문제가 된 이 연기를 놓고 동남아시아 정부들은 화전 금지령을 내렸지만 나아질 낌새가 안 보인다. 10년 전쯤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공룡자본 플랜테이션들이 동물 먹잇감인 옥수수니 기름용 팜나무를 대량 재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연기 주범이 산사람이 아니라 농산기업이란 것쯤은 모두가 안다. 학자들은 오히려 산사람이 대물림해온 돌려짓기 화전이 토양을 북돋우고 병충해를 막아준다며 보존과 지원을 외쳐왔다. 근데 여태 타이 정부는 눈에 빤히 보이는 ‘큰 고기’를 놔둔 채 산골 ‘잔챙이’만 잡아가뒀다. 그냥 서 있기도 힘든 40~70도 비탈에 손바닥만한 밭을 일궈 대대로 살아온 산사람들, 세상 억울한 일은 이 깊은 산속에서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을 낀 도시 정치에 치인 고달픈 국경 사람들 일상이다.

한겨레

44년을 전쟁터에서 보낸 뢰이위텐 장군은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정문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와이파이 팍팍 터지는 산골 마을

자동차마저 가쁜 숨을 몰아쉬는 험한 꼬부랑길 40여분, 이윽고 도이 매살롱 마을이 눈에 찰 때쯤이면 자동차도 사람도 모두 지쳐버린다. 도이 앙캉에서 100킬로미터 산길을 3시간에 달린 셈이다. 커피를 마시며 숨을 고르던 운전기사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옛날 사람들은 걸어 다녔을 텐데, 얼마나 걸렸을까?” 그러고 보니 이제 내남없이 자동차 시간으로 거리를 재는데, 산골에서는 실감하기 힘든 잣대다. 여기 기록이 하나 있다. 1967년 국민당 잔당이 ‘아편왕’이라 불린 쿤사와 겨룬 이른바 마약전쟁 때, 도이 앙캉 쪽 탐응옵에 진 친 국민당 제3군이 밤낮 꼬박 4일 걸어서 도이 매살롱의 제5군 진영에 합류했다고 한다. 산악 게릴라전에 이골 난 국민당 잔당이 어림잡아 하루 20킬로미터 밖에 행군할 수 없었다는 건 이 동네 산세가 얼마나 험한 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잣대다. 참고로 중국 대장정 때 인민해방군이 하루 최대 130킬로미터를 행군했다는 전설적인 기록이 있고, 요즘 세계 각국 특수전 보병들은 60~80킬로미터를 갈수 있다고들 한다. 펀펀한 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오늘도 도이 매살롱 마을은 또 낯설게 다가온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락거렸지만 올 때마다 서먹서먹하다. 여섯 달 전에 없던 호텔과 찻집이 마치 토박이라도 되는 듯 떡하니 고개를 내민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비포장 외길로 장마철엔 자동차가 다니기도 힘들었다. 하기야 “이 깊은 산골을 찾는 사람은 군인과 아편장사 뿐이다”라는 우스개가 나돌던 때였으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전인 지난 7~8년과 견줘 봐도 엄청나게 달라졌다.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잘 빠진 호텔과 식당, 찻집, 토산품 가게가 늘비하다. 다 산자락 밭이었던 곳이다. 그 전엔 마을 들머리란 것조차 없었다. 2백미터 남짓 길을 놓고 찻집과 기념품 가게 스무 개쯤 늘어선 게 다였는데 이젠 그 들머리가 2킬로미터 앞까지 튀어나와 있다.

“주민 2만3000에 한 해 관광객 2십만이 찾아든다.” 도이 매살롱 촌장 따위(41) 말이다. 2004년 취재 때 1만4000명이던 주민 수가 그 사이 9천명이나 불어난 셈이다. 사람 수가 크게 줄어드는 다른 산골 마을과 거꾸로 가는 도이 매살롱은 한 마디로 일거리와 돈줄이 넘친다는 뜻이다. 집집마다 자동차에다 위성안테나에다 컴퓨터에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이런 마을은 타이 산골에 흔치않다. 관광객이 뿌리는 돈도 한 몫 하지만, 그보다는 잘 키운 차니 고랭지 채소니 과일 덕이라고들 한다. 무엇보다 도이 매살롱 하면 차다. 타이완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뽑아내는 도이 매살롱 우롱차는 최고로 꼽는다. 32제곱킬로미터 밭에서 해마다 거두는 차 2백 톤이 이 마을 현금작물 노릇을 톡톡히 해온 셈이다.

도이 매살롱 마을로 들어서면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게나 식당 간판에서부터 차림표에 이르기까지 한자로 뒤덮인 데다 대형버스들이 쏟아내는 중국 관광객들과 마주치다 보면 얼핏 윈난 어디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다. 마을 한복판에 버텨선 3층짜리 현대식 타이군사은행(TMB)만 없다면 여느 윈난 마을과 다를 바 없다. 이쯤에서 좀 예민한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만도 하다. “이 외진 산골에 웬 은행이?” 옳다. 타이군사은행은 도이 매살롱 마을에 돈줄이 흐른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달리 이 마을 역사를 말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한겨레

버마 국경을 넘은 국민당 잔당이 재조직한 윈난반공구국군 사령관 리미 장군(온른쪽 첫번째)과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 한국전쟁 제2전선 형성을 위한 CIA의 비밀작전 ‘오퍼레이션 페이퍼’(Operation Paper) 존재 사실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친이후이 중앙연구원중산인문사회과학연구소 교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도와야한다’며 공격 명령 내려”

1950년 초 인민해방군에 쫓겨 버마 국경을 넘었던 장제스의 국민당 잔당은 다시 버마 정부군에 밀려 1960년대 초 타이 국경을 넘었다. 그 가운데 돤시원(段希文) 장군이 이끈 국민당 잔당 제5군이 1963년부터 본부를 차렸던 곳이 오늘날 도이 매살롱 마을이다. 국민당 잔당은 1970~1980년대 초까지 타이 정부의 공산당 박멸작전에 용병 노릇을 했고, 그 대가로 얻은 게 시민증과 도이 매살롱 정착 허가였다. 그렇게 군사기지로 출발한 도이 매살롱 마을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마약 중심지였다. 도이 앙캉 쪽 탐응옵에 진 친 리원환 장군의 국민당 잔당 제3군과 함께 세계최대 아편 생산지였던 타이-버마-라오스를 낀 이른바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루트 90%를 쥐고 있었다. 국민당 잔당은 애초 버마 국경을 넘을 때부터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타이군 비호 아래 아편으로 군자금을 마련했고 그 지도부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오늘날 도이 매살롱 마을의 밑천이 바로 아편이었고, 타이군사은행은 돈과 군대와 정치가 어우러진 도이 매살롱의 ‘보이지 않는 손’ 노릇을 해왔다. 그러고 보니 타이 정부가 도이 매살롱의 악명을 씻겠다며 ‘평화로운 언덕’이란 뜻을 지닌 산띠키리로 마을 이름을 바꾼 지 오래다. 그랬든 말든 사람들은 오늘도 모두 도이 매살롱을 입에 달고 살지만.

“아주 어두운 밤/ 별빛도 없다/ 대포 소리만/ 사방에서 울린다/.../ 용감한 동지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적진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적의 심장부로 쳐들어간다...”

찻집마다 둘러앉아 추억을 씹는 노병들 사이로 낡은 스피커가 뿜어대던 국민혁명군가 ‘예시’(夜襲·야간공격)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도이 매살롱 마을 변화는 소리로도 느낄 수 있다. 그 자리엔 모바일 폰에 정신 팔린 3세대들이 재잘거리고 타이완 최신 유행가가 귀를 때린다.

해거름을 쫓아 도이 매살롱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국민당 제5군 병영을 레이위톈(雷雨田) 장군이 호텔로 만든 곳이다. 그이는 제5군 사령관 돤시원의 오른팔로 도이 매살롱 마을 지도자 노릇을 하다 2012년 세상을 떠났다. 레이위텐 장군은 내게 아주 귀한 선물을 주고 갔다. 2004년이었다. 아직도 한국 현대사의 빈자리로 남아있는 ‘한국전쟁 제2전선’을 사료로 확인한 나는 증언으로 사실을 받쳐줄만한 사람을 찾아 타이와 타이완을 뒤지고 다녔다.

“1951년(4월14일) 우리 윈난반공구국군(리미 장군이 이끈 국민당 잔당) 2개 중대 2천명이 꼬깡(버마) 산골 타고 윈난으로 쳐들어가서 1주일 만에 컹마 점령했어. 그 때 중앙정보국 군사고문관 열댓이 헬리콥터 타고 왔지. 리미 장군이 ‘한국전쟁 도와야한다’며 공격 명령 내렸고.”

나는 뢰이위텐 장군을 3번이나 찾아가 매달린 끝에 이 몇 마디 말을 얻었다. 그로부터 전직 중앙정보국 조직책 빌 영과 국민당 제8군 709연대장으로 참전했던 타이완 외교관 슈쯔정(修子政) 장군을 통해 한국전쟁 제2전선 존재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중앙정보국 지원을 받은 국민당 잔당이 1951년 8월까지 적어도 7번 윈난을 공격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한겨레

‘총통만세’란 글과 장제스 사진을 건 1960년대 도이 매살롱의 국민당 제3군 본부. 돤시원 장군(첫줄 가운데)과 뢰이위텐 장군(첫줄 왼쪽 첫번째)을 비롯한 제3군 지도부 모습. 친이후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1970년대 타이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을 만난 국민당 제5군 사령관 돤시원 장군. 국민당 잔당은 타이 정부의 공산당 박멸작전에 용병으로 투입되었고, 그 대가로 도이 매살롱(제5군)과 탐응옵(제3군) 정착 허가를 얻었다. 친이후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잔당 덩치만 불리고 마약시장만 키워

이게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압록강을 넘은 중국 인민해방군 전력 분산을 꿈꾸며 승인한 중앙정보국의 극비작전 ‘오퍼레이션 페이퍼’(Operation Paper)였다. 앞서 타이완 정부군을 동원해 중국 본토를 치고 해상을 봉쇄하자던 맥아더 장군 주장을 매몰차게 물리쳤던 트루먼은 비밀스레 국민당 잔당을 투입해 한반도에서 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중국 남부 윈난에 그렇게 한국전쟁 제2전선을 펼쳤다. 그러나 한국전쟁 제2전선은 국민당 잔당이 멍하이를 비롯한 윈난 전략요충지 장악과 민중봉기에 실패해 아무런 이문도 없이 끝났다. 오히려 미국은 국민당 잔당의 덩치만 키워 인도차이나 지역 안보를 흔들어놓았고, 한편으로는 국제마약시장의 폭발적 팽창이라는 부메랑을 맞았다. 인민해방군 참전 오판과 한국전쟁 제2전선 실패, 이 둘은 미국 정부의 초라한 정보와 낭만적 예측이 낳은 한국전쟁 최대 실패작이었다.

이렇듯 한국전쟁 제2전선을 달렸던 국민당 잔당이 바로 도이 매살롱 마을을 세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들이 아시아 현대사에 처음 등장한 용병이었다. 서울에서 3276킬로미터 떨어진 이 국경 산골 마을이 그렇게 한국 현대사와 비밀스레 얽혀 있었다.

한국전쟁 제2전선을 달렸던 제5군 사령관 돤시원 장군은 1981년 도이 매살롱 마을 중턱 화려한 무덤으로 들어갔고, 뢰이위텐 장군은 대궐 같은 영웅기념관(泰北義民文史館) 한 복판 위패로 변했다. 노병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이제 그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전선을 갔던 소년병 출신 몇 만 남았을 뿐이다. 국민당 잔당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머잖아 국민당 잔당사는 깊은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역사는 묻지 않는 이들에게 답하지 않는다.’

긴 세월 동안 내가 국경을 쫓아다녔던 까닭을 곱씹으며 쿤사가 샨연합군(SUA) 본부를 차렸던 반 힌땍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달린다.

※필자의 요청으로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