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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파일] '셀프 논란'…홍준표 대표의 '전략적인' 대구 당협위원장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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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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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만들기로 한 지난 수요일(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 성명을 발표한 그날 저녁 6시 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면접을 봤다. 공석이 된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을 뽑는 면접이었다. 물론 이날 면접은 방금 거론된 대형 이슈들에 가려 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지는 못했다. 기자들 사이에선 "면접 날짜 기막히게 잡았네."라는 말이 나왔다.

면접 장소는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6층 회의실이었다. 홍 대표와 함께 면접을 본 사람은 주성영 전 의원과 서상기 전 의원이었다. 홍 대표의 면접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면접위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조차 촬영이 불허됐다. 기자들은 면접 내내 긴 복도 밖 유리문 앞에서 기다렸다. 1시간 정도 지나 홍 대표가 면접을 마치고 유리문 밖으로 나왔다. 홍 대표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기자들을 향해 씩 웃었다. 면접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면접 봤습니다. 면접 잘 했습니다."

면접 결과는 이틀만인 오늘 최고위원회 비공개 회의를 거쳐 발표됐다. 홍 대표는 예상대로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이 됐다. 당협위원장은 각 지역 당원들을 조직한 당협(당원협의회)의 우두머리다. 총선 공천의 지름길로 통한다. 홍 대표는 면접 때 "국회의원 선거(총선)에 절대 출마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입장을 수차례 강조했다고 이용구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전했다. 그는 "홍 대표의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신청은 지방선거를 이끌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의 당협위원장 면접은 신청 당시부터 입방아에 올랐다. 보수야당 대표가 이른바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지역의 당협위원장을 신청한 탓이다.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 당 대표 자신은 당 깃발만 달면 나무작대기를 꽂아도 당선인 곳을 가느냐."는 말이 나왔다. 안 그래도 얼마 전 현역 의원들을 포함해 '부실한' 당협위원장들을 대거 쫓아내면서 내홍을 겪은 자유한국당 아니었나. 당 대표가 수도권처럼 표 받기 어려운 곳을 골라 뛰어드는 게 아니라 제일 쉬운 곳을 골랐으니 '꽃길'만 걸으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보수주의가 아니라 '보신주의'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오늘 발표된 당협위원장 이름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인물이 몇 있다. 먼저 부실 당협으로 낙인찍힌 경기 화성 갑이다. 이곳은 친박(친박근혜)계 서청원 의원이 당협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 자리는 김성회 전 의원에게 넘어갔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럭비부 주장이었다. '동물 국회' 시절에는 늘 육탄전의 선봉에 섰다. 친박계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이 서 의원의 공천을 밀어줬다는 '공천 개입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부산 서구·동구 당협위원장은 홍 대표의 대선캠프에서 정무특보를 지냈던 정오규 전 한국공항공사 상임감사위원이 선정됐다. 역시 이곳은 친박계 유기준 의원이 당협위원장직을 상실한 지역이다. 문정림, 정미경 등 19대 때 의원을 지낸 정치인들도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바른정당을 기습 탈당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린 박인숙 의원도 '현역우선' 원칙을 적용해 당협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이 탈당한 지난 16일은 자유한국당의 서울 지역 당협위원장 면접이 치러졌던 날이다. 이미 그 전에 '마지막인데 정말 넘어오지 않을 거냐.'는 권유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이 맞는다면 이미 누울 자리를 보장 받고 넘어간 셈이 된다. 박 의원보다 조금 먼저 바른정당을 탈당한 김세연 의원의 경우 사고 당협으로 지정된 곳이 아니라 이번에는 대상이 아니고 다른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한다.

현재 홍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강효상 의원의 이름은 오늘 명단에 없었다. 탈락이면 재공모하겠지만 의결이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나 3차 발표 때 나올 거란 의미다. 안 그래도 대표의 대구행으로 말이 많은데, 비서실장마저 대구 달서 병에 당협위원장을 신청했으니 같이 발표하면 비난은 더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모양새를 고려했다는 건데 나눠 발표한다고 뭐가 다를까.

정치권 영입이 거론되는 한 인사는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홍 대표의 당협위원장 논란에 대해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만나면 다들 비판하는데 나서서 말하는 사람은 잘 안보이네요. 이거 잘못된 거 아닌가요?" 김태흠 최고위원은 이날 홍 대표가 대구 동을 당협위원장을 맡자 입장문을 내 "엄동설한에 당원들은 추위에 떨고 있는데 당 대표가 가장 따뜻한 아랫목을 염치도 없이 덥석 차지해버린 꼴"이라며 "이러니 끝없이 사당화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이에 대해 홍 대표는 "특정계파 대변자 노릇하다가 이제 와서는 당내에서 충치 노릇이나 한다면 언젠가 뽑혀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경고를 날렸지만.

홍 대표가 정말 친위부대를 앞세워 당을 사당화 하는 것인지는 두 번째로 따져 볼 일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가장 큰 병은 문제를 보고도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아닐까? 초·재선을 중심으로 한 쇄신 목소리도, 정풍운동의 기미도 없는 당. 당 대표에게 쓴 소리 한 번 하는 것도 주저하는 당. 지금 자유한국당이 가시밭길을 걷게 된 이유가 박근혜 정부 시절 '옳지 않은 것을 보고도 침묵했던 대가'라는 것을 깨닫긴 한 건지 궁금하다.

(사진=연합뉴스)

[최고운 기자 gow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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