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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르포]'용산참사 9주기'…눈물도 얼어버린 장위동 철거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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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2주 만에 기습 철거, 40년 몸 담은 고향 한순간 허물어져…또 다른 '용산참사' 우려]

머니투데이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재개발구역의 모습. 대부분의 건물의 철거가 진행된 상황이다. 건너편엔 재건축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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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이지만 인적은 없었다. 붉은 페인트로 ‘철거’라고 쓰인 집들은 텅텅 비어있었다. 곳곳에 깨진 유리조각들을 조심하며 걸어야 했다. 흰 종이가 붙은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2층에 사람이 살고 있어요’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의 흔적이었다.

1월 중순에 찾은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재개발구역은 유독 추웠다. 골목 안쪽에 있는 한 건물에서 남성 한 명이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대문이 쇠파이프로 둘러져 있어 쪽문으로 몸을 들이 밀었다. 추위에 떨고 있던 사람들이 어서 오라며 반겼다. 철거민들이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지 20일로 9주기를 맞았지만 철거민들의 생존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추모 열기는 뜨겁지만 폭력적인 강제 철거 집행과 사건사고가 이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재개발구역에서 철거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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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재개발구역의 모습. '사람이 살고 있어요'라고 쓰여 있는 건물 2층엔 노부부가 살고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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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동은 고모씨(73)에게 '제2의 고향'이다. 40년 가까이 몸을 담았다. 이웃들과 가족처럼 지냈지만 지금은 혼자 남았다. 고씨는 "재개발한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철거하러 왔어"라며 허공을 응시했다. 함께하며 의지했던 노인들은 무서워 다 떠났다. 오갈 곳 없이 버티는 고씨는 "후회하지 말라"는 협박까지 들었다. 그의 남편은 갑작스럽게 치매에 걸렸다. 평생의 정을 나눈 부부이건만, 고씨를 못 알아본다.

1700여 세대가 모여 살던 장위 7구역은 2013년 재개발사업시행인가 고시가 났다. 지난해 재개발사업변경인가고시를 마친 뒤부터 철거가 진행돼 현재 가옥주 5가구, 상가 세입자 6가구가 남아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4일부터 18일까지 동절기 강제집행을 말아달라는 농성을 벌였다. 추운 겨울에 쫓겨나면 오갈데가 없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은 묵살됐다. 20년 간 전파사를 운영하던 조모씨(52)는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지 불과 2주만에 기습적인 철거 강제집행을 당했다.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그는 고개를 떨궜다. 손때가 묻은 도구들과 판매할 상품들도 같이 철거당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갈 곳을 잃은 채 하루 종일 아직 철거당하지 않은 주민들과 시간을 보낼 뿐이다.

변경선 장위7재개발구역 철거민 비상대책위원회 실장은 "외부에선 우리를 돈만 바라는 사람으로 보지만 우린 어떤 특정한 금액을 바란 적이 없다"며 "추운 겨울에 기습으로 철거했다. 절차와 인권을 무시한 철거가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상식적인 보상안과 상생하려는 마음이 보이면 나갈 수 있는데 오갈 데 없는 우리에게 재개발조합, 구청, 서울시 누구도 손을 내밀며 같이 가자고 하질 않는다"며 "생계도 곤란한 상황에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생존권이 무시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합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 했지만 닿지 않았다. 성북구청도 철거민과 조합 양측의 중재에 나서는 등 사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구청은 철거민들이 이주하기로 결정하면 조합측이 철거민에게 걸은 부당입금 청구 소 등의 소송을 취하하는 쪽으로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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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7재개발구역의 모습. 집집마다 붉은 페인트도 '철거'라고 적혀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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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점점 격해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조합측에서 철거를 집행하려 하자 주민들은 신나를 뿌리거나 할복을 하며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또 다른 용산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철거민들은 9년전 용산참사 때와 지금이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장위동의 한 철거민은 "언제까지고 버티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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