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재는 기준' 1kg, 옛것 버리고 새것 담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표본질량 시간 흐르자 무게 감소 130년만에 바꿔…자연계 기본상수로 재정립 연구 ]

아침에 일어나면 몇 시인지 확인한다. 욕실에선 물의 온도를 조절하고, 휘트니스센터에선 저울에 올라 몸무게를 잰다. 출퇴근길 자동차에선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 내비게이션에선 도착지까지 남은 거리를 확인한다. 매시간 손에 쥔 스마트폰의 충전 상태를 점검하는 등 사람들이 아침에 깨어나 밤에 잠들기까지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무언가를 ‘재는’ 일이다. 이처럼 잴 때 쓰이는 ‘단위’는 간과하기 쉽지만 우리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존재다.

우리가 흔히 쓰던 표준질량 킬로그램(㎏)에 대한 정의가 130여 년 만에 바뀐다. 올해 11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선 ㎏ 재정의 안건이 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머니투데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킬로그램(kg) 원기/사진=표준연


◇못 쓰게 된 옛 기준…플랑크상수(h) 새 정의 도입=1kg의 기준은 1889년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높이·지름이 각각 39㎜인 원통형 원기(原器)이다. 그로부터 1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원기는 서서히 마모돼 머리카락 1개 질량인 10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 가까이 가벼워졌다.

국제도량형국(BIPM)은 원기와 공기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밀폐용기 안에 넣어 두고, 다른 저울 추를 조정할 때에도 공인된 복사본을 이용하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모두 막진 못했다. 기존 정의를 버리고 새로운 정의를 채택하게 된 이유다.

새 정의는 인간이 만든 원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기본 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상수(h)를 기준으로 삼는다. 간단히 말해 추를 올려놓은 저울의 반대편에 전기장을 걸어 수평을 맞추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고 이것을 단위로 변환, 질량을 구하는 식이다.

측정과학 분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올해 표준 질량과 연계된 전류(A), 온도(K), 물질량(mol) 단위도 물리학의 기본상수를 이용한 새 기준을 도입할 예정이다. 전류는 1948년, 온도는 1954년, 물질량은 1971년 각각 정의됐지만 상수가 아니다.

CGPM은 kg 재정의에 앞서 길이표준인 미터(m)의 정의를 ‘빛이 진공 상태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수정한 바 있다.

머니투데이

프랑스 파리 근교 세브르에 위치한 국제도량형국(BIPM) 전경/사진=표준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산업계 피해 막아라…2년 전부터 전세계 홍보회의=㎏ 새 정의는 내년 5월 20일부터 전 세계에 걸쳐 동시 적용한다. 1㎏ 정의가 달라지면 산업계 표준 역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정밀 측정이 필요한 산업계에선 일부 설비 보완이 필요하며, 이에 맞추지 못하면 국제 교역도 어려워진다.

이 같은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과학자들과 국제 홍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회의가 프랑스 파리서 열렸다. 지난 1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근교 세브르에 위치한 BIPM에선 SI(국제표준단위) 태스크그룹(TG) 4차 회의가 진행됐다. 올해 공표하게 될 SI 기본단위 재정의와 관련한 홍보전략을 수립하는 자리로 1차 회의는 2015년 11월에 열린 바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을 비롯해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프랑스 국립실험연구소(LNE), 일본 산업총합연구소(NMIJ), 영국 국립물리학연구소(NPL), 독일 물리기술연구원(PTB) 등 11개 국가측정표준기관, BBC 다큐멘터리 촬영전문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홍보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의 홍보 대상은 산업계, 정책입안자, 교사 및 강사, 언론, SI 사용자, 과학에 흥미를 갖는 대중 등 다양하다.



머니투데이

SI 단위 재정의 홍보를 위해 제작한 SI 일러스트레이션/자료=BIPM 홈페이지


국제 홍보 전문가 회의에선 SI가 어떻게 계정 됐는지 전반적인 설명이 담긴 ‘SI 브랜드북’ 및 SI 로고 제작,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아티팩트’(The Last Artifact, 마지막 인공물) 진행 현황이 등이 보고·논의됐다.

한국 대표로 참여한 표준연 시간표준센터 이호성 책임연구원은 “재정의된 kg의 경우 100만분의 1g 정도의 차이라서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중고등학교 과학교과서, 대학 이공계 교재 등에 반영돼야 한다”며 “예상보다 광범위한 범위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며 적용되어야 하는 까닭에 홍보전략을 수년 전부터 수립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눈에 띄는 건 ‘과학 굴기’를 앞세운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보이며 어떤 국가보다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과학기술 영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중국이 CGPM을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는 홍보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려 하고있다”고 말했다.

류준영 기자 joon@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