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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원룸이 예뻐졌다… 싱글, 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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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 원하는 1·2인 가구 '작아도 제대로 된 집서 살겠다'

쾌적하고 실용적인 내부 공간… 원룸·다가구주택 디자인 변화

건축가 서재원과 이의행은 재작년 서울 망원동 다가구주택 '쌓은집'을 짓는 동안 복병을 만났다. 근처 부동산 아주머니였다. 쌓은집은 5층 건물 3~4층에 길쭉한 직사각형 원룸이 2개씩 있다. 원룸을 벽으로 나눠 '투룸'으로 만들면 임대료를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게 부동산 얘기였다. 그러나 건축가는 벽을 치지 않고 방 양쪽에 통유리를 썼다. 서재원씨는 "실내가 앞뒤로 탁 트여 훨씬 쾌적해졌다"고 했다. 유리창을 크게 넣고 외벽을 흰색으로 마감했더니 빨간 벽돌벽에 작은 창문을 낸 전형적 원룸과도 완전히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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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시 다가구주택‘각설탕집’. 다가구 거주자들의 대표적 희망 사항인 외부 발코니를 모든 가구에 만들었다. 독특한 형태는 무미건조한 거리 풍경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진가 박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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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크게 늘면서 원룸이나 다가구·다세대 같은 소규모 공동 주택 모양이 달라지고 있다. '자취생이나 결혼 전 직장인들이 임시로 살던 집'에서 '혼자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과거 이런 건물은 싸게 짓고 방 하나라도 더 늘려 실내 공간은 열악한 게 보통이었다. 원룸이나 다세대주택은 '형편이 나아지면 떠날 곳'이었으나 '작더라도 제대로 된 공간에서 살겠다'는 욕구가 커지면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우선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과 시설이 좋아졌다. 좁은 원룸 안에 빨래도 널어야 하고 자전거나 재활용품을 보관해야 하는 실용적 문제에 대한 건축적 해법이다. 건축가 박창현이 서울 전농동에 짓고 있는 '유일주택'은 11개 가구를 위한 공동 공간을 지하에 마련했다. 대형 세탁기·빨래 건조기·다리미, 손님을 초대할 수 있는 8~10인용 테이블, 편백나무 욕조를 갖춘 개인 욕실을 만들었다. 욕실은 입주자들이 예약해 사용할 수 있다.

건축가 김창균의 경기 화성 '더 스퀘어'는 복도에 자전거 거치대와 재활용품 분리수거 시설을 마련해 실내를 침범하지 않도록 했다. 겉만 화려해지고 내실은 부족한 상가주택과 반대로, 겉은 수수하지만 내부 공간은 알차게 하자는 설계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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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서울 망원동‘쌓은집’. 큼직한 유리창을 원룸 앞뒤에 달았다. /사진가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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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이 이런 디자인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2010년대 들어서다. 2010년 한국 1인 가구 수는 4인 가구 수를 넘어섰다. 빠르게 늘어나는 1~2인 가구의 생활공간은 4인 가족을 염두에 두고 지은 아파트에 적합하지 않다. 아파트를 구입할 여유가 없는 경우도 많다. 원룸이나 다세대·다가구 디자인이 달라지게 된 이유다. 건축가 김성우가 설계한 서울 상계동 '341-5'는 2014년 원룸 건물로는 이례적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건축상을 받았다. 원룸 한 칸 한 칸을 계단식으로 쌓고 아랫집 지붕을 윗집에서 발코니로 쓰는 아이디어가 호평받았다. 유타건축의 경기 이천 '각설탕집'도 비슷한 형태로 다가구주택 집집마다 널찍한 발코니를 만들었다.

생각이 변하면 공간이 변하고 공간이 변하면 생각이 변한다. 김창균 건축가는 "내 집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꾸미며 만족감을 얻으려는 사람이 늘면서 다가구주택 디자인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우 건축가는 "부동산이라고 하면 여전히 아파트만 생각하지만 도시엔 소규모 공동 주택이 엄청나게 많다"며 "이 건물들이 변하는 모습에 따라 도시 풍경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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