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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초등생 급식보다 못한 2700원짜리 밥 먹고 일하는 버스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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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등학생 한 끼 평균 3377원…버스기사들은 2000원대 식사
저질식단에 끼니 거르거나, 도시락 싸들고 다니기도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서울 시내버스 기사들이 초등학생 급식보단 못한 저질의 구내식당 밥을 먹으며 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시내버스 회사에서 제공하는 구내식당 식사 단가는 2700원으로 올해 서울지역 초등학생 한 끼 식사 단가인 3377원보다 한참 낮다. 이에 일부 기사들은 회사에서 식권을 제공함에도 도시락을 따로 싸서 다니거나, 끼니를 거르고 있는 상황이지만 버스회사는 물론 노동조합, 서울시 모두 개선의지가 없어 기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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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 주간식단표 아침 메뉴. '깻잎', '유채나물', '무말랭이' 등 나물 반찬이 대부분이다. (사진=버스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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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식동물 인가요?”…먹을 것 이라곤 ‘풀’ 뿐인 식단

‘콩나물국, 호박나물, 근대나물, 무말랭이.' 지난 16일 제일여객㈜, 서울운수㈜, 한국BRT자동차㈜ 3개 버스회사가 모여 있는 은평구 진관공영차고지에서 나온 아침식사 메뉴다. 이곳 구내식당을 이용한 버스기사들은 “일할 맛이 안 난다”고 입을 모았다.

471번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한 버스기사는 “버스기사의 업무 특성상 차고지 내 구내식당에서 하루 두 끼를 해결해야 하는데 매일 풀만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버스기사는 “현재 책정된 식사 단가 2700원도 지난해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 오른 내용”이라며 “식사 질 문제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해당 구내식당은 400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지만 영양사를 채용하지 않아 지난해 관할 구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아 운영회사는 뒤늦게 영양사를 고용하기도 했다. 현재 이곳의 버스기사 100여명은 구내식당 식사 질 개선 요구 청원에 동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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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특성상 버스기사들은 점심은 물론 아침과 저녁을 구내식당에서 이용해야 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질식단'으로 인해 버스기사들은 "일할 맛이 안 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버스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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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조-회사 모두 ‘식사 질’은 뒷전

버스기사들은 이 같은 문제가 노조의 역할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이 맺은 '단체협약서 및 임금협정서'에 따르면 '회사는 순수복지후생적 측면에서 식사를 현물로 무상 제공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즉 회사는 기사들에게 식사 제공의 의무만 있고 식사의 질에 대한 의무는 없기 때문에 이를 노조가 챙겼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진관공영차고지를 이용하는 한국BRT자동차 노조 관계자는 "식사의 질 문제는 우선 순위가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현재 근무 순번에 따라 그마저도 먹지 못하는 기사들이 나오는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며 "근로자 400명 이상이 사용하는 곳인 만큼 사측과 협의해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식사의 질 문제는 서울의 65개 버스회사 상당수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네트웍㈜ 노조 관계자는 "여러 회사가 함께 사용하는 공영차고지의 경우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어 식사 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만큼 서울시에서 음식의 질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버스정책팀 관계자는 “식사 단가 등 관련 문제는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으로 시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할 수는 없다”며 “기사님들의 민원이 들어오면 ‘회사에 식사 질을 신경 써 달라’는 정도 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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