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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Science &]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블랙홀…전파망원경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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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12개 전파망원경 합쳐 블랙홀 관측…'사건의 지평선' 프로젝트 가동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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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우주. 검은 우주의 군데군데,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신비한 존재, '블랙홀(Black Hole)'이다. 엄청난 중력으로 근처에 있는 별과 행성을 잡아먹는 블랙홀. 하지만 인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블랙홀을 실제로 관찰한 적이 없다. 당신이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 블랙홀은 모두 '상상도'일 뿐, 실제 블랙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이 눈으로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천체가 빛을 뿜어내거나 다른 빛이 반사돼 눈으로 들어와 시신경을 자극해야 한다. 블랙홀은 빛을 먹어치울 뿐 반사시키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블랙홀 주변 천체의 움직임을 토대로 "이곳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겠구나" 하고 추측해왔다. 2018년 무술년과 함께 과학자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블랙홀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 목표다. 관련 데이터는 모두 모였다. 분석만이 남았다. 노벨상급 성과로 평가되는 블랙홀 관측. 올해 인류는 과연 블랙홀 발견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까. 1964년 지구에서 6000광년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천체인 '백조자리 X-1'에서 강한 X선이 방출되는 현상이 발견됐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근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떠한 천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암흑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X선 방출은 일반적인 '항성(별·태양)'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일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이곳이 블랙홀이 아닐까' 의심해왔다.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과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명예교수는 1975년 백조자리 X-1이 블랙홀인지 아닌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호킹은 '블랙홀이 아니다'에, 손은 '블랙홀이 맞는다'에 걸었고 내기에서 이긴 손은 미국 성인 잡지 '펜트하우스' 1년치를 선물받았다. 과학자들은 백조자리 X-1에서 방출되는 X선을 두고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물질이 마찰로 만들어내는 에너지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물질들은 블랙홀 주변에 팽이, 원반 같은 형태로 회전하며 다가오는데 이를 '강착원반'이라고 부른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강착원반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물체가 마찰로 인해 가열되고 이것이 X선으로 방출돼 지구에서 관측된다"며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우주에 있는 블랙홀의 존재를 예측해왔다"고 설명했다.

우리 은하의 중심에도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왔다. 1932년 궁수자리로 알려진 은하 중심에서 날아오는 신호가 포착됐다. 1970년대에는 강한 전자기파를 관측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궁수자리로 빨려들어가는 가스와 먼지를 발견했다. 또한 궁수자리 인근을 빠르게 돌고 있는 별을 발견하기도 했다. 궁수자리 인근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면 블랙홀의 질량 계산도 가능하다. 2002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진은 "우리 은하 중심에는 태양 질량 450만개와 맞먹는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알긴 알겠는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많은 이론을 토대로 블랙홀 주변에서 발생하는 빛의 움직임 등을 이미지화했지만 과학자들의 꿈은 이를 직접 관측하는 것이다. 2001년 셰퍼드 돌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해 전파망원경을 활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2012년에는 3~4개 전파망원경을 합치는 프로젝트도 진행됐다. 하지만 부족했다. 더 큰 해상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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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블랙홀 관측을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힘을 합치기로 했다. 지난해 4월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 천문학자들은 전 세계 9곳에 위치한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연결해 궁수자리 블랙홀을 관측하는 '사건의지평선(EHT)'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궁수자리 블랙홀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파를 같은 시각에 관찰해 해상도를 극대화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남극망원경(SPT·Southpole Telescope)의 전체 데이터가 추가로 도착하면서 모든 데이터가 한자리에 모였다. 데이터의 양은 2페타바이트(2000조바이트)에 달했다. 손 박사는 "현재 결과를 분석하는 단계에 돌입해 이르면 올해 안에 블랙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4월에도 추가 데이터 확보를 위한 관측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이 전파망원경을 이용하는 이유는 '전파'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어 저장·전송·처리 과정에서 다루기가 쉽기 때문이다. 빛은 먼 우주를 날아오는 동안 가스에 흡수되거나 산란을 일으킨다. 파장이 긴 전파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방해를 덜 받고 지구까지 전달된다. 지구에 있는 9개의 전파망원경을 모두 활용하면 지구에서 달 표면에 있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볼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 서울타워 전망대에 있는 사람 머리카락 한 올의 크기를 구분해낼 수 있는 정도다. 이번 관측에는 한국천문연구원 역시 참여했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과 동아시아전파간섭계는 올해 4월 궁수자리에 있는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과 처녀자리 은하단 중심의 초대형 블랙홀 M87 관측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한 블랙홀의 모습은 어떤 형태를 띨까. 과학자들은 토성에 있는 '고리'의 뒷부분까지 보이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블랙홀의 중력이 워낙 강해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뒤쪽에 있는 빛도 휘어지며 앞으로 전달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블랙홀로 끌려들어가면서 지구로 향하는 빛은 밝게 보이지만, 전파망원경에서 반대로 돌아나가는 빛은 보이지 않는다.

손 박사는 "블랙홀을 중심으로 한쪽은 밝고, 다른 쪽은 어두운 모양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하는 블랙홀은 기존의 간접적인 증거를 벗어나 블랙홀을 바라보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정 박사는 "기존에는 X선이나 감마선 등 블랙홀이 아니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빛을 보고 블랙홀의 존재를 추측했다면 이번 관측은 블랙홀이 중력으로 직접 (주물러) 구부리고 휜 빛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과 가스의 움직임으로 추측해 블랙홀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블랙홀이 아닐 수도 있다.

손 박사는 "가운데에 어두운 별이나 빛을 내지 않는 어떤 천체가 뭉쳐 있어도 블랙홀이 있는 것과 같은 별과 가스의 움직임을 만들 수 있지만, 블랙홀처럼 빛을 구부리고 휘게 할 수는 없다"며 "사건의 지평선 프로젝트는 블랙홀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현상을 관측함으로써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처음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블랙홀 주변에선 나이를 적게 먹는다?

블랙홀과 같이 중력이 큰 천체 주변에서 시공간은 왜곡된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이를 지구에서 실제 확인한 사례도 있다. 1971년 조지프 하펠 미국 워싱턴대 물리학과 교수와 미국 해군성 천문대 우주인이었던 리처트 키팅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기획했다. 300만년 만에 1초의 오차가 발생하는 정밀한 원자시계를 제트기에 싣고 동쪽으로 비행했다. 제트기 자체 속도에 지구 자전 속도가 더해지면서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60시간 동안 비행한 후 제트기에서 원자시계를 꺼냈다. 시계는 지구와 똑같이 흘렀을까. 아니다. 미세하지만 느려져 있었다. 이 결과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시간과 공간은 연결되어 있으며, 관찰자와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다른 공간의 시간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상대성 이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이 차이를 느끼기 어렵지만 영역을 확장하면 가능하다. 시속 200㎞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시간은 열차에 타지 않고 서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초당 50조분의 1초 느리게 간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이후 '중력은 빛을 휘게 하며 나아가 시간을 늦춘다'는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발전된다. 블랙홀과 같이 중력이 큰 천체 옆에서는 빛의 진행 방향도 휘어지고, 빛이 크게 휘어질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 지구보다 표면 중력이 28배나 큰 태양에서 시간은 지구상보다 초당 50만분의 1초 느리게 간다. 다소 과도한 상상력이 동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태양보다 중력이 훨씬 큰 블랙홀 주변이라면 중력의 영향을 받아 1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지구에서는 수년이 흘러버리는 시간 차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는 2010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33㎝ 높이에 있는 시계가 지면의 시계에 비해 10경분의 4초 정도 빨리 흐른다"고 밝혔다. 지면보다 33㎝ 높은 곳은 중력이 작은 만큼 시간이 빨리 흐르게 된다. 연구진은 "33㎝ 높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79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평지에 사는 사람보다 900억분의 1초 일찍 죽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인공위성은 어떨까. 지구 중력에서 벗어나 있는 만큼 인공위성 내부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야 한다. 하지만 위성은 시속 1만㎞가 넘는 고속으로 지구를 공전하는 만큼 속도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크거나 속도가 빠르면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위성은 중력의 효과에서 벗어나 시간이 느리게 흐리지만 빠른 속도로 인한 시간 지연 효과가 큰 만큼 이를 더하면 시간은 지구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GPS 위성 안에 있는 시계는 이 같은 상대성 이론을 계산해 세팅돼 있다. 만약 시간의 오차를 보정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수㎞ 이상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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